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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South Korea (Published on October 17, 2019 / Eunbyeol Lee)


 본 포스팅에 소개되는 자동차회사는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발전속도와 더불어 자동차 산업의 후발주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핵심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축적, 보유하고 있다.
 사라진 자동차 기업이었던 1부에이어 2부에서 소개되는 자동차 회사는 대한민국에 현존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 기아자동차 / 쌍용자동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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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 현대자동차 주식회사(HYUNDAI MOTOR COMPANY)
설립일 : 1967년 12월 29일

 

 첫번째는 국내에서 가장 큰 자동차 회사 현대자동차다. 현대자동차는 1940년 3월 "아산 정주영"에 의해 설립된 "아도서비스(Art Service)"라는 자동차 정비공장이 근원인데, 당시 자동차는 매우 비싼 사치품이었기에 자동차를 보유한 사람들은 부유층이 대다수였고 싸고 부실한 수리보다는 비싸지만 빠르고 완벽한 수리를 함으로써 사업 성공의 토대를 닦았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 일본의 기업통제정책인 "기업정비령"을 시행하면서 "일진공작회"로 아도서비스가 흡수 합병되었고 정주영은 어쩔 수 없이 자동차 수리사업을 그만두고 아도서비스를 정리한 자금으로 트럭을 구입, 석탄 운반업으로 사업방향을 변경했다. 1946년에는 미군 병기창에서 하청을 받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 수요가 늘어나면서 1947년 설립된 "현대토건사"와 합병을 통해 1950년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67년 정주영의 동생 "정세영"이 미국의 포드와 기술제휴를 통한 "현대자동차"를 설립했다. 1970년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도 기술제휴를 맺었고 1974년에는 영국의 최대자동차회사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핵심 인물을 영입, 종합 자동차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이 시기 한국증권거래소에도 상장되었다.
 1975년에는 단일 자동차 공장으로는 세계최대규모인 울산 공장이 설립됐고 1976년에 대한민국 최초 독자생산 모델 "포니(PONY)"를 출시했다. 포니는 출시 전부터 62개국 228곳의 상사에서 수입을 희망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큰 성공을 이뤄냈고 1985년에는 대한민국 최초 전류구동 승용차인 "엑셀(Excel)"을 출시하면서 미국 시장에 진출했고 이 역시 큰 성공을 하며 입지를 다져갔다.
 포니의 경우 미국 포드로부터 제조기술, 이탈리아로부터 디자인 설계, 일본 미쓰비시로부터 주요 부품 구입과 생산설비를 빌려와 작업했었기 때문에 국내 기술개발을 통해 내작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기술개발의 일환으로 1960년대부터 정주영은 자체 엔진 개발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미국 GM에서 근무 중이던 "이현순 박사" 영입을 시작으로 "마북 연구소" 설립하면서 1991년 국내 최초의 독자개발 엔진인 "알파 엔진"을 개발해냈다.

 1998년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 인수를 통해 거대 자동차 회사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시점에, 아산 정주영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차기 후계구도에 대한 암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주영의 동생 정세영의 리더십으로 가파르게 성장했기에 그의 아들 "정몽규"와 함께 경영권 방어에 나서기 시작했고, 1999년 시행된 주주총회에서 정주영의 아들 정몽구와 정세영이 대립했는데 정세영의 측근들이 모두 이사로 선임되면서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이는 정주영의 뜻과 다른 행보였고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정세영의 쿠데타"라고 표현하면서 이를 빌미로 같은 해 1999년 03월 10일 정주영의 장자 "정몽구"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 이임식과 동시에 정세영 부자는 현대자동차에서 완전히 물러났고 이들에게는 "현대산업개발"이 주어졌다.

 정몽구 체제로 돌아선 현대자동차는 2000년 다른 계열사 9개와 함께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어 "현대자동차그룹"을 형성했다. 2002년에는 중국 "베이징기차"와 합작 "베이징 현대"를 설립했고 2005년 미국 Alabama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해외 현지 생산도 늘려감으로써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도 준비해 나갔다. 그렇게 정몽구는 경영권 승계 후 10년 만인 2006년에 글로벌 6위 자동차 회사로 현대자동차를 키워냈다.
 2008년 "제네시스"브랜드 론칭, 2015년 고성능 브랜드 "현대N" 발표 등 고급화, 고성능 라인업도 갖추고 있으며, 신규 차종은 스튜디오들의 경합(유럽의 러셀하임 디자인 스튜디오 / 미국의 캘리포니아 디자인 스튜디오 / 한국의 남양연구소)을 통해 최적의 디자인을 선정함과 동시에 "디자인 언어"들을 공개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성과 현대자동차의 개성을 키워나가고 있다.

 

  • 디자인 언어
    1) 플루이딕 스컬프쳐(Fluidic Sculpture)
     - 2009년 9월 17일 등장
     - 공기 역학적인 유성현의 디자인과 4도어 쿠페 스타일
    2) 센슈어 스포티니스(Sensuous Sportiness)
     - 2018년
     - 패밀리룩이라는 공통된 요소를 만들어 두되, 전체적인 틀은 체스판의 말들처럼 모델별 각각의 특징과 개성을 부여


 2020년에는 정몽구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을 회장직으로 추대, 정몽구는 그룹 명예회장직으로 유지하며 여생을 보낼 예정이다.

 

 현대자동차는 아산 정주영이 초기 국산 엔진개발을 위해 노력한 것과 같이 가능한 모든 부분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는 지금까지 성장한 원동력이었고 앞으로도 현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정식 명칭 : 기아 주식회사(KIA Corporation)
설립일 : 1944년 12월 11일

 

 두 번째로 소개할 자동차회사는 현재 현대자동차 그룹 산하에 있는 "기아자동차"이다.
설립자인 "학산 김철호"는 1930년에 일본의 "삼화정공"을 인수해 자동차와 자전거 부품을 생산했는데 그와 동시에 일본의 기계산업기술도 습득할 수 있었다. 일본의 패전 후 한국으로 건너와 1944년 "학산 김철호"에 의해 기아자동차의 전신인 "경성정공"으로 설립했는데 초기에는 자전거부품을 제조했고, 1952년에 "삼천리 자전거"의 기원인 국내 최초의 자전거 "3000리호"를 출시하면서 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변경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1961년에는 일본의 "혼다"와 제휴하여 "기아혼다"를 설립, 오토바이 제조를 시작했으며 1962년 "도요공업*"의  "K-360" 모델을 들여와 3륜 화물차인 "기아마스타"를 생산하면서 자동차 산업에 진출, 해당 모델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1973년에 소하리에 종합자동차공장을 세우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 김철호의 아들 "김상문"이 후계자로 나서며 1974년 "마쓰다"의 모델을 바탕으로한 "브리사(BRISA)"를 출시하 국산 승용차 시장 1위를 차지했다.
 1975년에는 이륜자동차 부문을 떼내 "기아기연"으로 출범시켰고 1976년에는 "동국제강"으로부터 "아시아자동차"를 인수, 1979년에는 자전거 사업부를 "삼천리자공"으로 독립시켰다. 하지만 1981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산업합리화)에 의해 정부로부터 중소형 화물차 및 버스 전문 생산업체로 지정되면서 경영 위기에 빠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여 마쓰다 소형 승합차 "봉고"를 라이선스 생산과 1982년 원가절감 운동을 밀어붙이면서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위기를 넘겼을 뿐 승용차 생산중단에 따른 여파를 감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1987년까지 계속된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끝난 시점부터 "프라이드"와 "콩코드", "세피아" 출시를 통해 비로소 그룹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기아그룹의 잘못된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무리 사업확장과 계열사의 부실한 경영 실적, 외환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등으로 1997년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이 됐다. 이후 28개 계열사를 14개로 줄이고 임금 동결 등 자구책을 마련했으나 결국 그 해 10월 법정관리로 넘어갔고 1998년 국제 입찰을 통해 1999년 현대자동차에 매각된다.

 2005년 디자인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정한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에 의해 폭스바겐, 아우디 출신의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를 영입해 "호랑이코(Tieger Nose)"의 그릴 모양을 적용한 패밀리룩을 적용, 2009년 "K7"을 출시하면서 기아자동차의 부활을 일으켰다.
 현대와 기아는 디자인 스타일이 다른데 현대자동차가 급진적이고 미래적인 디자인이라면 기아는 무난하지만 오래봐도 질리지 않고 세련됨을 추구한다.

 현대자동차 인수 전보다 인수 후에 유럽, 북미 올해의 차에 기아자동차가 선정되는 등 세계인들에게 좋은 차로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으며,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인터페이스, 품질 측면에서도 일취월장하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정식 명칭 : 쌍용자동차(SSANGYONG MOTOR COMPANY)
설립일 : 1962년 12월 06일

 시작은 1954년 "한원 하동환"에 의해 설립된 "하동환자동차제작소"인데 1955년 한국전쟁 직후 폐차된 미군 트럭 엔진과 변속기를 활용하고 드럼통을 이용하여 버스를 출시했다. 이 드럼통 버스가 쌍용자동차의 출발점이었고 1950-1960년대 여객 수송의 주역이었다. 1966년에는 "하동환 버스"를 베트남과 보르네오로 수출하기도 했는데 이는 한국 최초의 자동차 수출이다.
 하지만 1967년 정부의 자동차 산업계열화 정책에 의해 "신진자동차" 계열사로 편입되었고 신진자동차에서 생산하는 버스를 위탁 생산했다.
1975년 신진자동차에서 독립, 기업공개를 통해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1977년에 "동아자동차공업"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하지만 신진자동차 계열사에 있는 동안 자체 버스 생산이 11년간 중단되었고 그 동안 동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에서 출시한 버스들이 대부분인 와중에 1979년 독자 모델을 출시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진 못했다.
 1984년 "거화"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4WD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이듬해 1985년 "코란도(KORANDO)"를 출시했다.
 거대 모기업을 거느린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는 엄청난 자금을 끌어모아 신차 개발에 투자했지만 동아자동차는 무차입 경영을 선호하던 하동환 회장에 의해 끌어들일 외부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거기에 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에 의해 많은 개발비용이 들어간 신차 출시가 불허, 거화 인수에 많은 자금을 쏟았던 하동환 회장은 동아자동차를 매각하기로 했다.

 1986년 쌍용그룹이 동아자동차 하동환 회장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경영권을 장악했다.
 쌍용그룹의 회장 "김석원"은 자동차광으로 유명했는데 동아자동차가 버스와 SUV를 생산하던 동아자동차에서 극과 극이었던 스포츠카와 럭셔리 고급 세단을 생산하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1987년 영국의 소규모 스포츠카 회사인 "팬더 웨스트윈즈(Panther Westwinds)"의 지분을 인수했고 팬더사의 "칼리스타(Kalista)"를 생산하기 위해 영국의 생산 설비를 몽땅 국내로 들여왔다. 같은 해 기술연구소를 세우기도 했다.
 1988년 동아자동차에서 "쌍용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하고, 같은해 자동차산업 합리화 조치에 의해 출시하지 못했던 "코란도 훼미리(KORANDO Family)를 출시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렇듯 코란도의 성공으로 쌍용자동차의 미래도 밝은 것처럼 보였지만 1991년 출시한 현대의 "갤로퍼(GALLOPER)"를 출시, 크게 성공하면서 코란도는 큰 타격을 입었다. 1992년에는 이로 인해 쌍용차의 위기가 시작되었는데 이를 대처하기 위해 김석원 회장은 SUV가 아닌 승용차에 승부수를 띄워 같은 해 벤츠와 가솔린 엔진 기술제휴를 통한 "체어맨(CHAIRMAN)"개발에 돌입했다.
 1993년에는 벤츠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쌍용자동차 자체적으로 개발한 "무쏘(Musso)"가 출시되었고, 1995년 독일에 첫 해외 판매 법인 "쌍용 오토모빌 도이칠란트"와 1996 중국 베이징에 첫 해외 A/S지사를 세움으로써 4WD 차량을 대표하는 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92년부터 이어진 적자와 더불어 체어맨의 개발비까지 더해지면서 빚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거기에 1996년 김석원 회장이 대구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경영소홀까지 더해지자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1997년 염원의 체어맨이 출시되었으나 판매량이 급증하다 2세대 "에쿠스(EQUUS)"에 의해 판매량이 급감했고 거기에 외환위기까지 터지자 대기업이었던 쌍용그룹은 공중분해되기 시작했다.
 김석원 회장은 쌍용자동차를 매각하기로 하고 부채는 반반 부담하기로 하고 대우그룹과 1998년 인수계약 체결했으나 쌍용자동차가 남기고간 부채에 쌍용그룹은 완전히 공중분해되어 사라졌다.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대우그룹은 판매망을 단일화하여 1999년형 무쏘(Musso), 체어맨(Chairman), 이스타나(Istana), 뉴코란도(New Korando) 등 기존 쌍용이 만든 자동차들은 대우 배지를 달고 출시되었다. 하지만 판매 부진을 극복하지 못했고 대우그룹의 무리한 확장으로 부채가 누적되어 인수한 지 1년 만에 대우그룹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및 경영정상화 과정에 들어가면서 쌍용자동차는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워크아웃 대상기업 시절 정부는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를 해외에 매각하겠다고 밝혔고 쌍용자동차는 대우자동차에서 분리되어 채권단 주도의 독자 경영체제에 들어갔다.
 2001년 "렉스턴(REXTON)"출시와 동시에 대박을 쳤고 2003년 출시한 체어맨의 페이스리프트 버전 "뉴 체어맨" 또한 에쿠스에 필적하는 판매량을 보이면서 흑자 전환되었다. 하지만 이런 흥행에도 불구하고 2004년 중국 "상하이 자동차(SAIC Motor Corporation Limited)"로 매각되었다.

 상하이자동차에 인수된 후 신차 개발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력이었던 SUV마저 현대자동차에게 추월당했다.
 상하이자동차는 인수 시 약속했던 재투자 또한 전혀 이행되지 않았고 인수목적이 기술을 빼가기 위한 우려가 있어 매각 당시 경제계와 시민들이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부에서는 국가핵신산업 해외매각을 용인한 결과로 결국 2006년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 불법유출 사건을 시작으로 수십 년간 발전시킨 국내 기술을 한 번에 통째로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후 2009년 상하이자동차는 세계금융위기를 틈타 법정관리를 전격 신청했다.

 법정관리와 함께 정리해고를 실시했고 3000명 이상이 해고되자 노동자들은 불법 파업투쟁을 단행하여 3개월 동안 직장이 폐쇄되었으며 노조는 장기 공장 불법 점거 파업에 돌입하였다. 옥쇄파업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 기간 정부는 중국 업체로의 기술유출과 대량해고를 방치한 것도 모자라 강제진압을 했다. 그 충격으로 수십 명이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으며 파업이 장기간 돌입할 것으로 보였으나 2009년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어 생산라인이 정상화되었다.
 장기간 파업으로 수천억 단위의 손실과 브랜드 이미지의 추락으로 청산위기까지 몰렸으나 가까스로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 인수 최고가액을 제시한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Mahindra & Mahindra)"에 매각되었다.

 2011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마힌드라는 경영 안정화와 노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기술개발 투자를 통해 2013년 최대 매출을 올렸으나 적자는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5년 디자인, 실내공간, 편의사항 등이 동급 대비 괜찮은 수준이었던 "티볼리(TIVOLI)"의 출시로 흥행에 성공했고 재정을 어느 정도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2016년에는 흑자 전환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내수시장 3위에 빛나는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재정으로 매년 4~5대 신차를 내놓은 경쟁사에 비해 긴 주기의 풀체인지로 인한 경쟁력악화와 티볼리 성공에 안주한 임원진들의 티볼리 패밀리룩 적용에 따른 4세대 코란도 부진으로, 2011년 이후 매출 증가에 따라 영업손실을 대폭 축소해가다 2017년부터 꾸준히 적자를 지속하면서 2020년 마힌드라의 경영권 포기와 함께 11년만에 다시 법정관리를 신청하였다.

 현재는 여러 기업들이 쌍용자동차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2022년 06월 "KG그룹"이 최종 인수예정자로 확정되었다.

 


  • 도요공업 : 현재의 마쓰다 주식회사(Mazda Motor Corporation)
  • 자동차공업 통합조치
    - 제5공화국 시기(1981 ~ 1988)에 등장한 자동차 산업에 가한 조치, 국산차 시장의 퇴보를 가져옴
    - 차종별 전문 생산 체제 강화 목적
     1) 현대 & 세한 : 승용차 제작((1~5톤 트럭 및 버스 생산 금지)
     2) 기아 : 1~5톤 트럭 및 중소형 버스 (승용차 생산 금지)
     3) 동아(현 쌍용자동차) : 소방차, 믹서트럭, 비포장 시멘트 운반차, 탱크로리 등 특수특장차 생산 (승용차 생산 금지)
  • (주)거화 : 옛 신진지프자동차 (한국GM의 전신인 신진자동차와 미국 AMC 합작사)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
    - 2001년부터 시작된 부채담보부증권 시장의 확대와 그에 따른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의 확대, 미국 부동산 버블로 시작,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 최대, 최악의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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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된 회사로고는 퍼블릭 도메인 혹은 자유이용 저작물이 아닌, 독점적 저작권이 존재하는 이미지입니다.
   본 블로그는 제한된 한도 내에서 이용합니다. (출처 : https://namu.wiki/)
※ 사용된 이미지는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무료 이미지입니다. (출처  :https://unsplash.com/@silex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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