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22
반응형

Mavrovo Lake, North Macedonia (Published on December 7, 2020 / Kristijan Arsov)

 

 

개요

 후계자 전쟁(Wars of Alexander's Successors)으로도 불리는 디아도코이 전쟁은 핼래니즘 문명을 만들어낸 알렌산드로스 3세가 기원전 323년 바빌론(Babylon)에서 후계자를 누구로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가장 강한 자(kratistos, κράτιστος)에게'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사망했고, 이로 인해 기원전 301년까지 진행된 마케도니아(Macedonia) 장군들 간의 분쟁을 말한다.

 

 

원인

 기원전 323년 6월 마케도니아(Macedonia)와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등을 병합해 핼레니즘 문명(Hellenistic period)을 창시한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the Great)은 바빌론(Babylon)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그의 아들이었던 알렉산드로스 4세는 뱃속에 있었기에 후계자가 없었다. 이로 인해 마케도니아 장군들 간에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후계 위기를 초래하기에 이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죽음 이후 두 개의 주요 파벌이 형성되었는데 하나는 아케도니아 왕국의 제1왕조인 아르게아스 왕조(Argead dynasty)하에서 통합된 제국통합파였고 또 다른 하나는 제국을 분할해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 하는 제국분할파였다.

 

 양 측은 여러 논의 끝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복동생이었던 뇌전증을 가진 필리포프 3세(Philip III)와 신생아였던 알렉산드로스 4세(Alexander IV)를 왕으로 옹립했다. 하지만 왕이 회복할 때까지 또는 다음 왕이 등극할 때까지 왕을 대리할 수 있는 왕의 인장 반지를 가지고 있던 제국통합파의 수장 페르디카스(Perdiccas)는 제국분할파의 수장이었던 멜레아그로스(Meleagros)를 살해하고 완전한 지배권을 차지했다. 이후 그를 지지한 장군들은 제국의 여러 지역에 통치자를 의미하는 사트라프(Satrap)가 되었다.

 

Diadochi satraps babylon

 

  • 프톨레마이오스(Ptolemaîos, Ptolemy I Soter) : 이집트(Egypt)
  • 라오메돈(Laomedon) : 시리아(Syria), 패니키아(Phoenicia)
  • 필로타스(Philotas) : 킬리키아(Cilicia)
  • 페이톤(Peithon) : 남동 메디아(Media)
  • 안티고노스(Antigonus) : 프리기아(Phrygia), 리키아(Lycia), 팜필리아(Pamphylia)
  • 네오프톨레무스(Neoptolemus) : 아르메니아(Armenia)
  • 아산드로스(Asander) : 카리아(Caria)
  • 메난드로스(Menandros) : 리디아(Lydia)
  • 리시마코스(Lysimachus) : 트라체(Thrace)
  • 레온나토스(Leonnatus) : 펠레스폰틴 프리기아(Hellespontine Phrygia)
  • 안티파트로스(Antipatros), 크라테로스(Craterus) : 마케도니아(Macedonia), 일리리아(Illyria)
  • 아르세실라스(Arkesilaus) :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 아트로파테스(Atropates) : 북서 메디아(Media)
  • 프라타페르네스(Phrataphernes) : Parthia(파르티아), 히라카니아(Hyrcania)
  • 푸케스타스(Peucestas) : Persis(퍼시스)
  • 트레폴레무스(Tlepolemos) : 크라마니아(Carmania)
  • 스타사노르(Stasanor) : 아리아, 드랑지아나(Drangiana)
  • 필리포프(Phillippos) : 박타지아나(Bactriana), 소그디아나(Sogdiana)
  • 옥시아르트(Oxyartes) : 간다라(Gandhara)
  • 시비리티우스(Sibyrtius) : 아라코시아(Arachosia), 게드로시아(Gedrosia)
  • 아르콘(Archone) : Bybylonia(바빌로니아)

 

 이후 기원전 323년부터 322년까지 진행된 라미아 전쟁(Lamian War)을 통해 그리스에서의 반란을 잠재웠고 동일 시기에 페르디카스는 제국의 동쪽 지역인 카파도키아(Cappadocia)를 정복했다.

 

 

제1차 디아도코이 전쟁(기원전 322년 - 320년)

 권력의 정점에 있던 페르디카스는 안티파트로스(Antipatros)와의 유대를 결속시키기 위해 그의 딸과 약혼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안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였던 올림피아스(Olympias)는 자신의 딸이자 대왕의 여동생이었던 클레오파트라(Cleopatra)와의 결혼을 권했고 권력욕을 억누르지 못한 페르디카스는 일단 안티파트로스의 딸과 결혼을 하고 나서 바로 이혼을 하고 클레오파트라와 결혼을 하려고 했다. 이를 알게 된 안티파트로스는 크게 분노했고 기원전 322년 페르디카스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에 위협을 느낀 동료 장군들인 크라테로스(Craterus), 프톨레마이오스와 함께 반 페르디카스 파벌을 만들어냈다.

 기원전 321년 프톨레마이아스의 군대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관을 왕실 묘지로 운구하던 페르디카스 측 군대를 습격하여 관을 탈취했고, 페르디카스는 대왕의 시신을 반환해 줄 것을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프톨레마이오스의 타도를 목표로 이집트 원정이 시작됐다. 이에 안티파트로스는 군대를 양분하여 자신은 이집트로, 크라테로스는 소아시아에 보냈다. 소아시아에서는 친 페르디카스 세력인 에우메네스(Eumenes)와 크라테로스 간 헬레스폰토스 전투를 통해 크라테로스가 사망했고, 이집트로 진군한 페르디카스는 나일 강(Nile River)을 건너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중 페르디카스의 부하였던 셀라우코스(Seleucus), 페이톤(Peithon), 안티게네스(Antigenes)에 의해 페르디카스는 암살됐다.

 

Hellenistic world blank

 

 이로 인해 페르디카스의 패배로 제1차 디아도코이 전쟁은 마무리되었고 트리파라데이소스(Triparadisus) 협정을 통해 안티파트로스가 새 섭정이 되어 마케도니아로 이송되었고 리시마코스(Lysimachus)가 트라키아(Trakya)를, 셀레우코스가 바빌로니아를, 페이톤이 메디아(Media), 안티게네스가 수사(Susa) 일대를 지배하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섭정인 안티파트로스에 의해 에누메네스를 비롯한 친 페르디카스 세력은 마케도니아 왕국의 적으로 규정되어 그들을 토벌하는 군 최고사령관에 안티고노스(Antigonus)가 임명되었다.

 

 

제2차 디아도코이 전쟁(기원전 319년 - 315년)

 

Hellenistic world blank

 

 최고 사령관에 임명된 안티고노스는 대군을 이끌고 친 페르디카스 세력이었던 에우메네스를 공격했고 노라라는 산악 요새에 고립시켰고, 기원전 319년 크레토폴리스 전투(Battle of Cretopolis)를 통해 페르디카스의 동생이었던 알케타스(Alcetas)를 자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직후 안티파트로스가 병사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안티파트로스의 자리였던 마케도니아 왕의 후견인 자리에 대해 아들 카산드로스(Kassandros)가 아직 젊다는 이유로 크라테로스의 부관이었던 폴리페르콘(Polyperchon)이 차지하게 되는데 동맹세력으로 에우메네스를 선택, 그를 지원하면서 노라의 산악 요새에서 무사히 탈출하게 된다.
 

 카산드로스는 폴리페르콘이 섭정이 된 것에 불만을 가졌고 폴리페르콘에 맞서기 위해 안티고노스, 리시마코스, 프톨레마이오스 등과 동맹을 맺었고 이 강력한 동맹을 바탕으로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일대에서 벌어진 내전에서 카산드로스는 승리할 수 있었다. 패배한 폴리페르콘은 알렉산드로스 4세와 그의 모친 록사나(Roxana), 알렉산드로스 3세의 모친 올림피아스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에페이로스(Epirus)로 탈출했다. 에페리로스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폴리페르콘은 올림피아스와 함께 마케도니아를 다시 침공했고 올림피아스는 필리포르 3세와 그 아내 에우리디케(Eurydice)를 생포해 죽였다. 하지만 기원전 316년에 벌어진 피드나 전투(Battle of Pydna)에서 패배했고 카산드로스는 올림피아스를 왕을 죽인 죄로 처형시킨 후 마케도니아를 장악했다. 그로 인해 알렉산드로스 4세와 그의 모친 록사나는 카산드로스의 보호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편 노라 산악 요새에서 탈출한 에우메네스는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방에서 군세를 정비해 317년 파라에타케네 전투(Battle of Paraitakene)에서 안티고노스와 결전을 치렀지만 승부를 가르지 못했고 기원전 316년 가비에네 전투(Battle of Gabiene)를 통해 에우메네스에게 패했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에우메네스는 문관 출신에다 그리스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장군들이나 부하들로부터 경원시되었고, 결국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안티고노스에게 인도되어 처형당했다. 에우메네스에게 승리한 안티고노스는 그가 남긴 태수 영지나 부하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편입했고 소아시아에서 동쪽에 걸친 광대한 지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제3차 디아도코이 전쟁(기원전 314년 - 311년)

 

Hellenistic world blank

 

 안티고노스의 세력이 너무 강해지자 다른 디아도코이(Diadochi)들과 대립하게 되었다. 기원전 315년 바빌론의 셀레우코스는 안티고노스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는데 이것으로 갈등이 표면화되었고 기원전 314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카산드로스, 리시마코스가 손을 잡고 안티고노스과 맞섰다. 하지만 안티고노스는 영토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갔고 시리아(Syria)를 침공하면서 프톨레마이오스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또한 펠로폰네소스 반도(Peloponnese)에 잔존해 있던 폴리페르콘 세력과 연합하기에 이른다. 이에 카산드로스와 리시마코스가 아나톨리아(Anatolia)를 공격했고 안티고노스는 이를 격퇴하기 위해 북진했다. 그러던 중 기원전 312년 안티고노스의 아들이었던 데메트리오스(Demetrius)가 가자 전투(Battle of Gaza)에서 프톨레마이오스에게 패배했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지원을 받은 셀레우코스(Seleucus)가 바빌론을 수복하자 안티고노스는 다시 남하해야 했다. 남하한 안티고노스는 셀레우코스와 기원전 311년부터 309년까지 진행된 바빌로니아 전쟁(Babylonian War)을 시작했지만 셀로우코스의 승리로 끝나면서 안티고노스의 바빌론 공격을 좌절시켰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안티고노스 뿐만 아니라 대립 관계에 있는 프톨레마이오스 등도 휴전을 바라게 되었고 결국 카산드로스-리시마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는 휴전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을 통해 마케도니아의 카산드로스, 트라키아의 리시마코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아나톨리아와 시리아의 안티고노스가 모두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 정도로 독자적인 세력을 가졌음을 공인하게 되었고, 이 협정 이후 카산드로스는 알렉산드로스 4세와 그 모친 록사나를 죽이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생아였던 헤라클래스(Heracules)마저 독살하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를 끊어버렸다.

 

 

제4차 디아도코이 전쟁(기원전 308년 - 301년)

 

Hellenistic world blank

 

 휴전 협정으로 잠시 숨을 돌린 디아도코이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세력 확장에 다시금 욕망을 품기 시작했고, 기원전 308년 카산드로스가 폴피페르콘과의 화해를 하면서 그리스 전역에 동요를 불러일으키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안티고노스와 손을 잡고 에게 해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침공했다. 하지만 큰 성과는 없었고 곧이어 안티고노스와의 협력관계도 무산되었다. 이후 기원전 307년 카산드로스가 에페이로스에 간 사이 안티고노스의 아들인 데메트리오스(Demetrius)가 아테네를 점령했고 기원전 306년에는 키프로스(Cyprus)로 쳐들어가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을 통해 프톨레마이오스 군대를 격파하고 키프로스를 장악했다. 이 시기부터 안티고노스와 데메트리오스는 왕을 칭하기 시작해고 연이어 카산드로스, 리시마코스, 프톨레마이오스, 셀레우코스도 왕위를 자칭했다.

 

Diadoch-es (입소스 전투 이전 디아도코이들의 영역)

 

 카산드로스와 프톨레마이오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데메트리오스는 자신감을 얻어 기원전 305년 로도스(Rhodes)를 공격했지만 로도스에서의 강력한 저항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지원군에 막혀 로도스 공성전(Siege of Rhodes)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로도스에서 프톨레마이오스를 공격할 때만 빼면 안티고노스를 지원할 것을 약속했고 이로 인해 그리스에서 카산드로스를 상대로 승기를 잡게 되었다. 기원전 302년 안티고노스는 그리스에서 자신을 맹주로 하는 헬라스 동맹을 결성했고 궁지에 몰린 카산드로스는 휴전을 제안했지만 안티고노스는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이에 카산드로스는 안티고노스를 대적하기 위해 리시마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셀레우코스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가장 가까운 트라키아에 있던 리시마코스가 아나톨리아 반도(Anatolia)에 침입하자 데메트리오스는 부친 안티고노스를 돕기 위해 아나톨리아로 철수했다. 안티고노스와 데메트리오스에 의해 아나톨리아를 휩쓸고 다니던 리시마코스가 입소스(Ipsus)에 고립되었는데 때마침 셀레우코스 군대가 도착해 양측 사이에 대전투가 벌어지면서 기원전 301년 입소스 전투(Battle of Ipsus)가 발발했다. 디아도코이 전쟁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전투였고 셀레우코스의 압승으로 끝이 나면서 안티고노스는 전사했고, 데메트리오스는 패잔병을 이끌고 그리스로 패주 했다.

 

Diadochi 301 Shepherd (입소스 전투 직후 디아도코이들의 영역, BC 301)

 

 이로 인해 안티고노스의 왕국은 승자들에 의해 분할되었고, 각 왕조가 성립되었다.

 

  • 셀레우코스 왕조 : 시리아, 바빌로니아, 이란 고원, 소아시아 동부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키프로스, 이집트
  • 안티파트로스 왕조 : 마케도니아
  • 리시마코스 왕조 : 트라이카, 소아시아 서부

 

 

디아도코이 전쟁 이후

 입소스 전투 이후 마케도니아의 지배권이 계속 화두에 올랐고 그러던 중 그리스로 패주 했던 데메트리오스가 재기를 노려 카산드로스의 동생인 플레이스타르코스(Pleistarchus)로부터 리키아(Lycia)와 킬리키아(Kilikya)를 빼앗았다. 기원전 297년 카산드로스가 병으로 죽자 혼란은 더 가중되었고 기원전 294년 카산드로스의 아들들인 안티파트로스 2세(Antipatros II)와 알렉산드로스 5세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기에 이른다. 알렉산드로스 5세가 데메트리오스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쳐들어가 알렉산드로스 5세를 죽이고 마케도니아를 점령했다. 또한 안티파트로스 2세는 리시마코스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리시마코스는 안티파트로스 2세를 죽인 후 데메트리오스와 협상해 데메트리오스의 아들 안티고소느 2세(Antigonus II Gonatas)에 의해 안티고노스 왕조가 기원전 276년 마케도니아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이로써 안티파트로스 왕조는 3대 만에 멸망했다.

 데메트리오스가 마케도니아에 원정하는 틈을 타 프톨레마이오스는 키프로스와 리키아를, 셀레우코스는 킬리키아를 빼앗아 갔고 기원전 287년에는 에페이로스(Epirus)의 피로스(Pyrros)에 의해 마케도니아가 점령되면서 데메트리오스는 궁지에 몰렸다. 하지만 리시마코스가 마케도니아를 침공하면서 피로스가 쫓겨났고 마케도니아는 리시마코스가 차지하게 되었다. 한편 궁지에 몰린 데메트리오스는 그의 아들인 안티고노스 2세에게 그리스와 테살리아를 맡기고 아나톨리아를 침공하여 재기를 노렸으나, 셀레우코스에게 패배해 포로가 되어 몇 년 후에 죽었다.

 기원전 283년에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숨을 거두면서 리시마코스에 의탁한 작은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Philadelphus)가 왕위에 올라 프톨레마이오스 2세로 즉위했다. 또한 그해 발생한 리시마코스 왕가의 내분을 틈타 셀레우코스가 리시마코스를 공격했고 기원전 코루페디온 전투(Battle of Corupedium)에서 리시마코스를 죽이고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의 첫째 아들이었던 케라우노스(Ceraunus)가 셀레우코스 진영에 합류했지만 다르다넬스 해협(Dardanelles Strait)을 건너 트라키아에 상륙했을 때 케라우노스는 셀레우코스를 암살하고 마케도니아의 왕을 칭했다.

 리시마코스와 셀레우코스가 모두 사망해 공백이 생기자 마케도니아에서는 리시마코스의 잔당들과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가 싸우게 됐는데 마침 동방으로 이주하던 대규모 켈트(Celts) 부족들이 공백을 틈타 마케도니아, 그리스, 아나톨리아로 쇄도해 왔다. 기원전 279년 케라우노스는 켈트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해 살해당했고, 마케도니아는 정치적 공백 상태에서 군인들이 왕을 옹립하고 갈아치우는 혼란에 빠졌다. 이때 그리스에 있던 안티고노스 2세가 본격적인 반격을 해 기원전 277년 리시마케이아 전투(Battle of Lysimachia)에서 켈트인들을 몰아내 아나톨리아 중부의 칼라티아(Calathea)에 정착하게 만듦으로써 마케도니아는 겨우 안정되었다.

Epigons274-272 (3왕국의 판도, BC 274-272)

 

 기원전 272년까지 이어인 피로스의 마케도니아 공격이 그의 죽음으로 끝이 나면서 마케도니아는 확고한 안티고노스 왕조의 땅이 되면서 50년가량 지속된 싸움은 끝이 났다. 이로써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라는 3 왕국 체제가 완성되었다.

 

Mediterranean at 218 BC-en (로마가 성장하기전 지중해 판도, BC 218)

 

 


 

반응형

 

728x90
반응형

'Series > S9: THE WA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차 포에니 전쟁(First Punic War)  (0) 2022.11.24
시리아 전쟁(Syrian Wars)  (0) 2022.11.23
피로스 전쟁(Pyrrhic War)  (1) 2022.11.18
제나라-연나라 전쟁(Qi-Yan War)  (0) 2022.11.17
라미아 전쟁(Lamian War)  (0) 2022.11.16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