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전국시대 연나라(燕, Yan)가 기원전 284년부터 279년까지 제나라(齊, Qi)를 침공한 전쟁
전국시대(戰國時代, Warring States period)
기원전 486년(또는 기원전 403년)부터 중국 내 전국칠웅(戰國七雄, Seven Warring States)이라 불리는 주요 일곱 개 나라가 공존하던 시대를 일컫는데, 기원전 221년 진 시황제(秦始皇帝, Qin Shi Huang)의 진나라(秦, Qin)가 중국 통일을 달성하면서 막을 내렸다.
전국시대 주요 7개국
- 진(秦, Qin)
- 조(趙, Zhao)
- 위(魏, Wei)
- 한(韓, Han)
- 제(齊, Qi)
- 연(燕, Yan)
- 초(楚, Chu)
원인
기원전 320년 즉위한 연나라 38대 연나라 왕 쾌(噲, Kuai)는 왕으로서 능력이 부족해 여자와 술을 즐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모든 국정은 재상인 자지(子之, Zizhi)에게 일임했다. 그러던 중 자지 일파의 녹모수(鹿毛壽)가 요(堯, Liao)의 임금이 자기 아들이 아닌 능력 있는 신하를 왕으로 즉위시켜 성인의 반열에 올랐고 연왕 쾌 또한 자지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준다면 요 임금과 같은 명예를 얻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당시 연왕 쾌는 놀기 좋아하는 데다 나이도 많았고 자지를 최고 관직인 상국(相國)에 임명할 정도로 신임이 깊었기에 이를 승낙하게 된다.
이로써 기원전 317년 연나라 39대 왕은 자지가 되었고, 왕이 된 자지는 무리한 개혁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는 연나라가 피폐해지는 결과를 낳았고 왕위 계승을 이어받지 못한 쾌의 아들이었던 태자 평(平)이 기원전 315년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내전은 자지에 의해 제압되었고 반란을 일으켰던 태자 평 또한 전사했다.
전국시대 당시 여러 나라들이 많은 전쟁들을 일으켰으나, 제나라와 연나라는 서로 이웃나라임에도 큰 전쟁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나라 내부에서 이와 같은 소란이 일어나자 당시 선왕 벽강(宣王 辟彊) 치세 하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제나라는 기원전 313년 태자의 원군을 자칭해 침공, 자지를 처형하고 연왕 쾌는 자살에 이르게 한다. 이후 제나라는 연왕 쾌의 서자이자 태자 평의 이복동생인 직(職)을 임금의 자리에 앉히면서 연나라를 제나라의 속국화하고 종묘를 불태우며 대약탈을 하기에 이른다.
연나라의 복수심
기원전 311년 즉위한 연나라 40대 왕 소양왕 직(昭襄王 職)은 제나라가 자신을 왕의 자리에 앉혀 놓았지만, 부왕을 죽이고 왕실의 종묘와 수도를 약탈했던 과거를 기억하며 제나라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왔고 그의 스승이었던 곽외(郭隗)의 가르침을 따라 여러 부국강병챙을 시행했다. 그중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임금을 높여 중국 내 인재들이 연나라로 가면 출세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인재를 포섭하는 정책이었는데, 이로 인해 명장 악의(樂毅, Yue Yi)와 같은 인재들을 등용하면서 28년의 세월 동안 내정에 집중, 군사와 군량을 늘려가며 연나라의 군사력을 키워갔다.
연 동맹군과 제의 위기
연나라가 복수심을 통해 군사력을 키워가는 동안 기원전 300년 민왕 지(湣王 地)가 제나라를 이끌고 있었고 왕으로서 기질이 탁월했던 민왕은 자신의 아버지 선왕의 정책을 잘 계승해 나가면서 전국사군자(戰國四君子, Four Lords of the Warring States)라고 불리는 맹상군(孟嘗君, Lord Mengchang)을 재상으로 기용해 제나라의 영토를 늘리기도 하는 등 절정기를 이끌었다.
제의 영토를 늘리는 과정에서 이웃 나라였던 한, 조, 위가 제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고 이를 지켜보던 연나라의 소양왕은 한, 조, 위나라에 접근해 동맹을 결성했다. 추가로 진나라까지 합세하면서 5개국 연합군이 구성되었고 총사령관은 연나라의 악의로 결정되었다. 결성된 연합군은 기원전 284년 제의 국경을 공격했고 이어 제서(濟西) 전투에서 제나라의 중앙군을 대파했다. 연합군이 파죽지세로 제나라를 침공해 들어오자 제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민왕마저도 도주했고 연나라군은 수도 임치(臨淄)까지 밀고 들어가 보물과 종묘의 제기를 빼앗아 연나라로 보냈다. 이를 시작으로 왕이 없는 제나라의 성읍을 공략하기 시작해 72개의 성 중 70개의 성을 정복했고 나머지 두 개 성을 포위하기에 이른다. 한편 제의 민왕은 초나라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요와 제 모두를 수복하려는 초나라의 장수에 의해 시해당했다.
제나라의 결사항전
제나라의 상황은 처참했다. 왕은 초의 장수에 의해 시해당했고 연의 연합군은 즉묵성(卽墨城)과 거성(莒城)을 제외한 나머지 성을 모두 점령했으며 제나라 군 총사령관 마저 죽은 상태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수도 임치를 관리하던 하급관리 전단(田單)이란 자가 제나라의 사령군이 되었고, 사령군이 된 전단은 첫 번째로 민왕의 아들이었던 법장(法章)을 제나라의 왕으로 옹립시키고 패잔병들을 수습해 즉묵성과 거성에 집중 배치한 다음 결사항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연나라 악의가 이끄는 연합군은 남은 두 개의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총공세에 나섰다. 기원전 283년 전단이 이끄는 제나라 중앙군이 주둔한 즉묵성을 먼저 함락시키기 위해 연합군이 당도했고 총공세를 펼쳤으나 1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함락되지 않았고 결국 기원전 282년 즉묵성과 거성에서 좀 떨어진 곳에 보루를 축성해 항복한 자들을 진휼하고 백성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 이후 3년이 지나도 두 성을 함락시키지는 못했다.
제나라-연나라 전쟁 후기
그러던 와중에 기원전 279년 자신을 지지하던 연나라의 40대 왕인 소양왕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다. 소양왕의 죽음과 동시에 41대 왕은 혜왕(惠王)이라는 시호를 가진 소양왕의 아들 악자(樂資)가 즉위했다. 혜왕은 태자 시절 악의를 의심해 악의를 내쫓을 것을 건의했다가 실패하면서 악의에 대한 원한을 갖고 있었는데 제나라의 전단은 이간계를 써 혜왕으로 하여금 악의를 실각시키도록 만들었다.
이간계에 속아 넘어간 혜왕은 악의를 내쫓고 기겁(騎劫)이라는 장수를 사령관에 임명했는데, 기겁은 제나라가 멸망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전단 또한 성안의 병사들에게 곡소리를 내게 하거나 기겁에게 뇌물을 바치는 등의 계략을 동원해 두 성에 남아있는 제나라 사람들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게끔 만들었다. 기겁의 경계가 거의 사라지자 성안에 구멍을 낸 다음 수많은 소를 준비해 뿔에 칼을 달고 꼬리에 불을 붙인 채로 연군의 진영까지 돌격시켰고, 5,000명의 병산들을 이끌며 연군의 후미까지 기습해 연군을 격파하고 연나라의 사령관인 기겁까지 전사시켰다. 훗날 전단의 이 기상천외한 전략은 화우지계(火牛之計, The Flaming Oxen)라고 불리며 회자되었다.
화우지계로 즉묵성과 거성을 포위하던 연나라군을 무찌른 제나라 군대는 역공을 시작해 기원전 279년 연나라 연합군으로부터 빼앗겼던 70여 개의 성을 모두 회복하고 국토를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제나라는 연나라 연합군의 침공으로부터 승리는 했지만 국력을 대부분 잃어버렸고 연나라 역시 혜왕 즉위 이후 주력군을 모두 잃음으로써 군사력이 줄어들었고 제-연 전쟁 이후 국력을 회복할 틈도 없이 제나라뿐만 아니라 조나라로부터 공격을 저지하는데 바쁜 실정으로 바뀌었다. 결국 연나라는 기원전 222년, 제나라는 기원전 221년 진나라의 32대 왕인 시황제에 의해 멸망했다.
전국사군자(戰國四君子, Four Lords of the Warring States)
- 제의 맹상군(孟嘗君, Lord Mengchang)
- 조의 평원군(平原君, Lord Pingyuan)
- 위의 신릉군(信陵君, Lord Xinling)
- 초의 춘신군(春申君, Lord Chuns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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