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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opje, Macedonia (Published on July 3, 2021 / Darko Cvetanoski)

 

 

개요

 기원전 323년부터 322년까지 진행된 라미아 전쟁 혹은 그리스 전쟁(Hellenic War)으로 불리는 이 전쟁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아이톨리아 동맹(Aetolian League)까지 포함된 그리스 도시 국가 연합이 동맹국 보이타이아(Boeotia)가 포함된 마케도니아(Macedonia) 왕국과 벌인 전쟁이다.

 

 

라미아 전쟁 이전

 

Map Peloponnesian War 431 BC

 

Greece relief location map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그리스는 스파르타(Sparta)는 기원전 371년 레우크트라 전투(Battle of Leuctra)에서 테베(Thebes)에게 패배해 패권을 잃은 상태였고 테베 역시 기원전 362년 발발한 만티네이아 전투(Battle of Mantinea)에서 스파르타 군사력을 무너뜨릴 정도로 명장이었던 에파메이논다스(Epaminondas)가 전사하면서 예전의 강력함을 잃은 상태였다. 또한 아테네(Athens)가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에 이은 2차 해상 동맹을 구축했으나 기원전 357년 발발한 사회 전쟁(Social War)으로 주요 도시국가들이 동맹에서 이탈하면서 델로스 동맹만큼의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스파르타, 테베, 아테네 중 어느 누구도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고 도시국가들도 분열되고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 청소년기를 테베에서 인질로 보냈던 필리포스 2세(Philip II)가 그리스 북부의 마케도니아로 귀국해 아르게아스 왕조(Argead dynasty) 25대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마케도니아 왕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마케도니아를 강국으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군제 개혁을 통해 뛰어난 상비군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필리포스 2세가 주도한 군제 개혁을 통해 페제타이로이(Pezhetairoi)라는 이름의 중장보병을 만들어 냈는데, 마케도니아 역시 대부분의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장보병이 군의 중심을 이뤘는데 기존의 2-4m의 그리스 장창보다 훨씬 큰 7.3m 정도의 장창을 들게 하고 방패에 줄을 매달아 목에 걸게 하여 거대한 장창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백병전의 능력을 향상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왕 친위대인 헤타이로이(hetairoi), 특수 보병인 히파스피스타이(Hypaspistai)에 이르기까지 마케도니아 군 전체의 능력을 한층 더 향상시켰다.

 

218aC mappa del mar Mediterraneo

 

Greece relief location map

 

 기원전 357년 필리포스 2세는 오랜 시간 마케도니아를 괴롭히던 서북쪽의 일리리아(Illyria)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 뒤 일리리아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북방의 안정을 찾은 필리포스 2세는 사회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테네에게 접근해 아테네가 오랜 시간 노리던 암피폴리스(Amphipolis)를 점령해주는 대신 기원전 363년 빼앗겼던 피드나(Pydna)를 반환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암피폴리스를 점령한 마케도니아는 아테네에 반환하지 않고 피드나와 함께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에 아테네가 전쟁을 선포했으나 북서쪽 올린투스(Olynthus)를 중심으로 한 칼키디키 동맹(Chalkidian League)에게 포테이다이아(Potidae)를 점령해 양도하는 조건으로 연합해 아테네군을 물리쳤다. 아테네와의 협약을 깬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칼키디키 동맹과의 약속을 이행했다.

 

 마케도니아가 차지한 암피폴리스의 금광으로부터 막대한 군자금을 얻을 수 있었고 기원전 356년 금광이 발견된 크레니데스(Crenides)까지 점령하면서 마케도니아는 재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기원전 355년에는 아테네의 메토니(Methoni)를 공격, 아테네가 함대를 파견했지만 기원전 354년 마케도니아의 승리로 이어졌다. 이후 트라이카(Thracia)의 해안도시인 아브디라(Abdera)와 마로네아(Maronia)까지 차지하면서 그리스 북부 대부분을 차지하며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Greece relief location map

 

 한편 테베가 지배하던 암픽티오니아 동맹(Amphictyonic league)이 신성한 땅을 경작한 죄로 포키스(Phocis)인들에게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자 지불을 거부한 포키스에게 기원전 356년 제3차 신성 전쟁(Third Sacred War)이라 불리는 전쟁을 선포했는데, 손쉬운 승리를 예상한 테베의 생각과는 다르게 포키스가 델피(Delphi)의 아폴로 신전(Temple of Apollo)을 점거해 축적된 보물로 대규모 용병군을 고용, 테베의 공격을 격퇴해버린다. 기원전 353년에는 제3차 신성 전쟁이 테살리아(Thessaly)까지 확대되자 라리사(Larissa)가 마케도니아에 지원을 요청했고 페래(Pherae)는 포키스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마케도니아와 포키스가 대결하는 구도로 발전했다. 초기 전투에서 여러 차례 마케도니아가 패배했지만 기원전 352년 크로커스 평원 전투(Battle of Crocus Field)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테살리아 동맹(Thessalian League)의 맹주가 되었고 마케도니아는 테살리아까지 세력 범위를 넓히면서 여러 항구와 강력한 기병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후 제3차 신성 전쟁은 포키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에까지 도움을 요청해 전쟁을 이어나갔지만 마케도니아는 그들과 맞붙어 싸우지 않고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에 집중, 기원전 348년 올린토스를 공격해 합병하면서 칼키디키 동맹을 해체시켰다. 내륙에서의 마케도니아의 확장을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기원전 346년 아테네와 마케도니아가 평화협정인 필로크라테스(Philocrates) 화약을 맺으면서 전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필로크라테스 화약 자체가 아테네에게 불리한 것들이 많았고 마케도니아의 계속되는 세력 확장에 아테네 내부에서는 마케도니아와의 항전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테베와의 반 마케도니아 동맹을 결성해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Battle of Chaeronea)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필리포스 2세의 전략에 아테네와 테베 동맹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테베의 신성 부대는 전멸에 이르기까지 하면서 마케도니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로 인해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전체의 패권을 장악했고 기원전 337년에는 코린토스(Corinth)에 그리스 도시국가와 각 대표들을 소집하여 엄청난 규모의 군사동맹인 코린토스 동맹(League of Corinth)을 결성했다. 이는 그리스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 동맹체를 구성한 것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Map Macedonia 336 BC

 

 

라미아 전쟁 발단

 

Greece relief location map

 

 기원전 324년 마케도니아의 고관이었던 하르팔로스(Harphalos)가 바빌론(Babylon)에서 자신이 저지른 사치를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며 왕실 금고를 횡령하여 아테네로 망명하기 위해 나타났다. 하지만 아테네는 하르팔로스를 연금하고 그의 재산을 몰수하면서 이후 마케도니아 사절들이 하르팔로스의 송환을 요구했지만 아테네는 계속해서 거절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같은 해 치러진 올림피아(Olympia) 제전에서 마케도니아가 지금까지의 그리스 추방자들에 대한 일괄 대사면령을 포고했고 아테네의 식민지였던 사모스(Samos)에 본래 지배층이 돌아오게 되면서 점령한 영토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아테네에서는 하르팔로스를 넘겨주는 대신 사모스의 종주권을 유지하게 해 달라는 협상을 시도했으나 하르팔로스가 탈출하면서 무산되었고 결국 기원전 323년 마케도니아에서는 사모스는 사모스인들의 땅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던 중 기원전 323년 06월 11일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알렉산드로스 3세(Alexander III)가 급사했고 마케도니아 내부에서는 왕위 계승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에 아테네에서는 마케도니아의 패권을 벗어날 좋은 기회로 삼아 주전론이 들끓기 시작했고 하르팔로스에게서 빼앗은 자금을 통해 용병을 고용, 아이톨리아 동맹(Aetolian League), 테살리아, 포키스 등을 끌어들여 동맹을 결성한 후 반란을 일으켰다.

 

 

전투

 

Greece relief location map

 

 아테네 주도의 동맹군은 25,000명에 달했고 마케도니아의 동맹인 보이오티아를 상대로 승리하고 요충지인 테르모필레(Thermopyles)에서 안티파트로스(Antipatros)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를 패퇴시키면서 승승장구 하기 시작했다. 패퇴한 마케도니아군은 라미아(Lamian)로 퇴각했고 아시아로 파견되어 있는 대부분의 부대가 돌아오기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공성 능력이 부족했고 라미아는 좀처럼 함락되지 않았다.

 기원전 322년 초 마케도니아의 장군인 레온나토스(Leonnatos)가 라미아에 갇힌 마케도니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라미아로 향했고 무방비한 그리스 동맹군을 격퇴하려고 했으나 이를 알아차린 그리스 동맹군은 레온나토스가 안티파트로스를 만나기 전 요격하기 위해 테살리아에서 조우하게 된다. 기병끼리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치열한 접전 끝에 레온나토스가 전사하면서 레온나토스의 보병들은 후퇴해 안티파트로스의 군대에 합류했다. 결과적으로 레온나토스는 안티파트로스가 라미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지만 펠레스폰트 해협(Hellespontos)에는 여전히 아테네 함대가 장악하고 있었고 지원군의 지휘관 레온나토스가 전사하는 뼈아픈 실책을 가져가는 지원이었다.

 기원전 322년 봄에는 마케도니아의 장군인 크라테로스(Crateros)가 함대를 소집해 펠레스폰트로 향했고 아비도스 해전(Battle of Abydos)과 라모르고스 해전(Battle of Amorgos)에서 승리하면서 아테네의 헬레스폰트 재해권을 상실시켰다. 이후 해협을 건너 안티파트로스와 합류해 마케도니아군의 전력을 크게 증강시켰고 재전을 위해 남하를 시작했다.

 기원전 322년 여름 테살리아 크라논에서 아테테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동맹과 마케도니아군은 맞붙었고 크라논 전투(Battle of Crannon)라고 불리는 이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가 승리하면서 아테네의 패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마케도니아에 평화협상을 요청했으나 마케도니아에서는 개별 도시국가들과만 평화협상을 하겠다고 못 박았고 그리스 동맹에서 강화조건을 거부하자 테살리아의 몇몇 도시를 함락시켰다. 이로 인해 아테네를 중심으로 했던 그리스 동맹은 와해되었고 마케도니아군은 아테네로 향해 반마케도니아 정치가와 지지자들을 사형시키면서 라미아 전쟁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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