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기원전 149년부터 146년에 걸쳐 일어난 로마 공화국(Roman Republic)과 카르타고(Carthage)의 최후의 전쟁으로 이후 카르타고는 완전히 멸망했고, 로마는 패망한 카르타고의 영토를 식민지화하면서 지중해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
제1차, 제2차 포에니 전쟁을 거치면서 카르타고는 서부 지중해 패자의 위상을 완전히 상실했고 로마에 항복하면서 진행된 강화 조약을 통해 해군을 해체하고 시칠리아(Sicily), 히스파니아(Hispania) 등 모든 해외 영토를 로마에게 넘기게 된다. 또한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로마의 허락 없이는 전쟁도 할 수 없게 되면서 사실상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카르타고는 풍부한 농업 생산력과 아프리카 지중해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해상무역이 활발해 국력의 회복세가 빨라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군사적으로는 완전히 몰락한 상태였다.
이러한 특성때문에 카르타고는 기원전 156년 이후부터 불과 5년 만에 전쟁의 상처를 없애고 예전 못지않은 강한 국력으로 재성장 하게 되었고, 이를 지켜보던 로마는 카르타고에서 제2의 한니발 바르카(Hannibal Barca)가 출현할 수 있다는 불안함과 언제든지 과거의 군사력을 갖출 수 있다는 불안함이 더해지자 카르타고의 주변 국가인 누미디아(Numidia)로 하여금 카로타고의 선박과 영토를 주기적으로 약탈하라는 은밀한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이를 받아들인 누미디아는 주기적으로 카르타고 영토에 침입해 약탈을 일삼았고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기 시작한 카르타고는 로마에게 누미디아의 제재 또는 군사적 행동의 허가를 요청했으나 이를 허락해주지 않았다. 이로 인해 카르타고에서는 로마에 대한 증오심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이를 견디다 못한 카르타고는 로마와 맺은 조약을 무시하고 대규모 용병을 모집해 누미디아와 맞서 싸웠다. 하지만 누미디아 군에 패배하면서 로마에 보내고 있는 전쟁 배상금뿐만 아니라 누미디아에도 50년간의 전쟁 배상금을 지급하게 됐다. 하지만 이 패배뿐만 아니라 이 소식을 들은 로마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조약 위반으로 간주함과 동시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한편 조사단을 파견했다.
카르타고는 로마 원로원에 사절단을 여러 차례 보내 사과하며 앞으로는 강화를 준수하겠다고 했으나 로마에서는 카르타고 전체의 무기 몰수와 새로운 배상금 부과 등 여러 압박을 가했고 로마가 요구하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배상금과 무기를 로마에 넘겨주자 로마에서는 수도를 파괴하고 모든 주민들을 해안에서 15km 밖으로 이주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카르타고 사절단은 해당 조건은 카르타고를 죽이는 것이라고 항의했으나 로마 원로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쟁일 뿐이라며 이들을 돌려보냈고, 카르타고로 돌아온 사절단은 이 조건을 들은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처형당했다.
로마와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평화주의자였던 사절단을 모두 처형해버린 카르타고인들은 이미 승패는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도시를 파괴해 굴욕감과 비참함을 맛보느니 끝까지 로마와 싸우다 죽는 것을 선택했고, 결국 로마와 전쟁을 결정했다.
제3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149년 전쟁을 결정한 카르타고 시 전체가 로마군에 의해 포위되어 공방전이 시작됐다. 로마에 모든 무기를 로마로 보내버린 카르타고는 나무, 나뭇가지를 무기로 사용하거나 성안의 성벽을 헐어 투척용 돌로 활용했으며, 도시 안의 모든 무기공장을 가동하여 일부 무장을 갖추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로마에서는 무수한 병력으로 맹공을 퍼부었지만, 카르타고인들은 살아남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처절하게 항전하며 버텨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로마에서 예상한 점령 시간보다 지연되기 시작했다. 장기전이 시작되자 엄청난 시간과 인력, 물자가 소모되었고 로마군의 전쟁 피로도 역시 심화되자 전쟁이 시작된 지 2년 뒤인 기원전 147년 집정관 자격 연령에는 미달했지만 2년간 다른 지휘관들보다 확연히 나은 활약을 보여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Scipio Aemilianus)를 집정관으로 선출하여 지휘를 맡겼다. 이는 원칙을 어겨가며 뽑아준 만큼 반드시 끝장을 보라는 로마의 의사표시였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총지휘를 맡은 로마군은 집요하게 공격을 지속했고 전쟁이 시작한 지 3년 차인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의 성벽이 뚫렸다. 성을 함락한 로마군은 싸우다 죽는 길을 택한 카르타고인들이 처절하게 저항하자 무자비한 학살을 벌였고, 25만의 인구를 자랑하던 카르타고는 고작 5만여 명만 살아남게 되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노예가 되었다.
텅 빈 카르타고는 로마인들에 의해 17일 동안 카르타고 내 모든 것이 태워지고 소금까지 뿌려가면서 철저히 파괴하면서 완전한 불모지가 되었다. 결국 한 때 수백 년간 지중해를 호령하던 찬란했던 해양도시국가 카르타고는 기원전 146년 멸망했다.
전쟁 이후
카르타고의 영토는 아프리카 속주로 재편되었고 북아프리카의 풍요롭고 비옥했던 농지는 부호나 영주 등이 땅을 소유하는 형태인 파티푼디움(Latifundium)으로 바뀌어 로마 귀족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카르타고시는 백 년 가량 방치되어있다가 로마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가 재건을 시작,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가 재건을 끝마친 뒤 북아프리카의 주요 항구로서 기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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