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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roit, United States (Published on May 17, 2016 / Doug Zuba)


 2부 미국 자동차 회사에서는 1부에서 소개했던 미국 자동차 회사 삼대장 안에 포함된 자동차 회사를 소개한다.
해당 회사들은 비록 현재는 GM / 포드 / 크라이슬러 산하에 있긴 하지만 1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미국의 삼대장 자동차 회사의 모태가 되기도 했으며 미국 자동차 산업을 이끈 주역들이다.
 2부에서는 이러한 설립 이후 현재까지 남아있는 자동차 브랜드 뷰익 / 캐딜락 / 쉐보레 / 닷지 / 링컨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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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 Buick Motor Car Division
설립 : 1902년

 

 GM(General Motors)의 계열사 중 하나인 "뷰익(BUICK)"은 GM의 모체로써 "데이비드 던바 뷰익(David Dunbar Buick)"에 의해 설립되었다.
 데이비드 던바 뷰익은 19세기 후반에 가솔린 동력 선박 및 농장용 엔진을 만들다가 1900년 "뷰익 오토-빔 앤 파워 컴퍼니(Buick Auto-Vim and Power Company)"를 설립했고 그 시기 수석 엔지니어였던 "월터 마르(Walter Marr)"에 의해 1902년 최초의 Buick 자동차가 만들어졌지만 그와 동시에 자동차 사업을 위해 빌렸던 과도한 빚에 의해 부도위기까지 내몰리자 1903년 말 "제임스 H 휘팅(James H. Whiting)"이 설립한 "플린트 웨건 웍스(Flint Wagon Works)"에 인수되었다. 인수된 후 기존에 위치하던 디트로이트에서 플린트로 사업부가 옮겨져 자동차를 생산했으나 각종 부채와 소송에 시달리던 플린터 웨건 웍스 주주들은 1904년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에게 판매했다.

 윌리엄 튜런트에게 인수된 이후로 4년 만에 300배 이상의 판매량을 갖추게 되었고 포드, 캐딜락, 올스모빌을 제치고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1908년에는 윌리엄 듀런트가 설립한 "제너럴 모터스(GM, General Motos)"에 합병되었고, 당시 디자인은 물론 기술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혁신적인 브랜드로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뷰익은 1938년 리플렉터블 라이트*, 파워 윈도우, 전동식 컨버터블 개폐장치 그리고 독창적 디자인 언어를 선보이기도 했고 1984년 출시한 "그랜드 내셔널(Grand National)"은 엄청난 성능으로 터보차저에 대한 인식을 바꿈과 동시에 세계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GM에 의해 중장년층을 타겟으로 하는 브랜드로 배치되면서 최악의 성능과 디자인 등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2004년 출시한 "라크로스(LaCrosse)"의 출시로 겨우 부활할 수 있었다. 현재에 이르러 미국보다는 중국에서 굉장한 인기가 있다.

 1906년 회사를 떠난 뷰익은 자동차 제작과 무관한 일을 하다 1929년 가난하게 생을 마감했다. 지금까지 수천만 대의 자동차가 뷰익의 이름을 달고 생산됐지만 실제로 그가 관여한 차는 고작 120대에 불과하다.

 


정식 명칭 : Cadillac Motor Car Division
설립일 : 1902년 08월 22일

 

 "헨리 릴런드(Henry Leland)"는 "브라운&샤프(Brown & Sharpe)" 공장에서 근무하며 엔지니어링과 정밀공구 제작기술을 배웠고 자동권총 제조업체에서 측량 및 공구 제작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이후 1867년 연삭 장비 및 공구 등을 제작하는 "릴런드&폴코너(Leland & Faulconer)" 기계공장을 설립하면서 정밀 가공 기술의 장인으로 인정받아 "올즈모빌(Oldsmobile"에 엔진과 변속기를 납품했다.
 1901년에는 당시로서는 월등한 성능을 가진 10.25마력 엔진을 만들었는데 올즈모빌에서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납품을 거부하면서 직접 자동차 제작에 뛰어들게 된다.

 이후 1902년 파산위기에 있던, "헨리 포드(Henry Ford)"에 의해 설립된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Detroit Automobile Company)"를 인수, "캐딜락 자동차 회사(Cadillac Automobile Company)"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헨리 포드는 1903년 "포드 모터 컴퍼니(Ford Motor Company)"를 설립해 포드 자동차의 역사를 써내려 갔다.
 
 1902년 "가변식 밸브 타이밍 1기통 엔진(Variable Valve Timing Single Cylinder Engine)"을 장착한 캐딜락 최초의 프로토타입 모델을 출시로 1903년 양산형 "모델A"를 선보이면서 상류층의 큰 인기를 얻었다. 이때부터 럭셔리 브랜드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05년 크루즈 컨트롤이 장착된 "모델D"를 출시하기도 했고 1907년에는 세계 최초로 250개 부품을 표준화해 호환이 가능한 "모델S"를 선보였다. 모델S를 계기로 캐딜락은 영국 황실로부터 트로피를 받기도 했고 "세계의 표준(Standard of the World)"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기 시작했다.

 1909년에는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와 "제너럴 모터스(GM, General Motors)"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킨다는 조건을 걸고 캐딜락을 매각했다.
이후 1912년에는 "모델30"이 출시되었는데 전기로 구동하는 시동장치, 점화장치과 전조등을 최초로 장착한 양산차였다. 이러한 혁신적인 기술들로 여성들에게 운전의 기회를 열어주고 영국 황실로부터 두 번째 트로피를 수상한다. 당시 영광의 상을 두 번이나 받은 최초의 자동차 회사였다. 1915년에는 캐딜락의 시그니처인 "V8 엔진"을 장착한 양산차를 출시했다.

 1925년 캐딜락은 락카 페인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926년 경쟁사들이 어둡고 칙칙한 색상의 자동차를 공급할때 500가지 이상의 색상 조합을 제공했다. 또한 그해 "할리 얼(Harley Earl)"을 영입해 디자인적인 측면도 고려하기 시작, 1927년에는 엔지니어가 아닌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최초의 미국차로 "라살(Lasalle)"을 출시했다. 20년대 말에는 캐딜락은 아름다움과 고급스러움의 대명사로 만들어 준 디자인 철학이 탄생했다.

 미국의 대공황으로 고가 시장을 타겟으로 한 캐딜락의 판매상황이 악화되자 GM의 구조조정 대상 1순위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 고소득 백인층 뿐만 아니라 흑인층에게도 판매를 개시하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고, 그 와중에도 세계 최초 V16엔진을 승용차에 장착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36년에는 중간가격대 시장에 진출해 할리 얼의 디자인을 적용한 "시리즈 60(Series 60)"의 출시로 큰 인기를 끌며 안정적인 재정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40년대 진주만 공습 이후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군수물자 생산에 집중했는데 전쟁 후에 할리 얼에 의해 "테일 핀" 디자인을 선보이며 미국 자동차의 옆모습을 다시 한번 변화시켰다. 이후 20년 가까이 미국 자동차에서 테일 핀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또한 "올해의 차(Car of the Year)" 상을 최초로 수상하며 자동차 산업에 대한 캐딜락의 영향력을 재차 확인했다.

 1950년을 전후로 호황기를 만끽했는데 1951년 연간 생산량은 전쟁 전의 2배에 가까운 10만대를 넘어섰다. 또한 V8엔진을 탑재한 캐딜락 차량이 "르망 24시간 레이스(24 Hours of the Le Mans)"에서 상위권에 속하면서 자동차 제조에 대한 기술력 또한 입증해나갔다.
 50년대 자동차 산업의 트랜드를 이끌던 캐딜락을 대표하던 차는 1953년 출시한 "엘도라도(Eldorado)"였는데, 부와 명예,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대통령 취임식뿐만 아니라 유명 연예인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또한 완전 자동변속기와 고성능 엔진, 차량용 라디오, 셀프 레벨링 서스펜션 등 수많은 전동 편의장비를 개발해 기술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오일 쇼크 이후 다운사이징을 모토로 한 차종을 출시하기도 했으나 비용절감으로 이윤을 내겠다는 GM 경영진의 뜻에 따라 GM 내부 브랜드들을 배지엔지니어링하면서 다른 형제차들과 차별화되어 있지 않았고 디자인의 발전은 없었으며 이로 인해 캐딜락 고유의 디자인 특징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1950년대를 풍미했던 엘도라도 조차 고유한 헤리티지 없이 출시되었고 1990년대 RV 열풍에 밀려 10세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또한 GM에서 캐딜락의 매출액을 늘리기 위해 렌터카로 물량을 쏟아부으면서 중고차 가격과 브랜드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등 캐딜락은 고급차로서의 옛 지위를 상실해갔다.

 떨어진 브랜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1999년 캐딜락의 디자인 언어인 "Art & Science"를 선포하면서 2002년 출시한 "CTS"와 2003년 출시한 "XLR"에 첫 적용을 시작으로 부활하기 시작했고 2004년 출시한 "CTS-V"와 같은 고성능 디비전 "캐딜락V"를 선보이면서 고성능 스포츠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캐딜락V는 고성능 고급 세단에서 600마력대의 시작을 알리고 실제 생산 차량과 모터스포츠에서도 뜻깊은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이후에는 GM 내 최상위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지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국내에는 2017년 말 "GM아시아퍼시픽지역본부"법인을 통해 판매 중에 있다. 초기에는 GM코리아였다가 2018년 "캐딜락 코리아"로, 2019년 다시 "GM 아시아 퍼시픽 지역본부"로 법인명을 변경했다.

 


정식 명칭 : Chevrolet Division of General Motors Company
설립일 : 1911년 11월 03일

 

 쉐보레는 1911년 GM의 설립자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와 경주차 레이서 "루이스 쉐보레(Louis Chevrolet)"에 의해 설립되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GM의 설립자였던 윌리엄 듀런트에 의해 쉐보레가 탄생했는데, 1908년에 설립한 GM에서 윌리엄 듀런트의 경영방침 중 하나인 부실기업 위주의 문어발식 인수합병으로 회사의 재정상태를 악화시켰고 이로 인해 GM 이사회에서 1910년 강제 퇴출당했다.

 이후 루이스 쉐보레와 쉐보레를 설립했고 설립 직후 1912년 "클래식 식스(Classic Six)"를 출시하면서 강력한 성능을 바탕으로 큰 인기를 모았고 브랜드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포드의 경쟁모델로 1914년 출시한 "490"은 엄청난 흥행에 성공하며 1927년 포드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러한 쉐보레에 성공에 힘입어 1916년 GM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최대주주에 올랐고 1917년 쉐보레는 GM의 별도 부문으로 합병되었다. 하지만 윌리엄 듀런트는 회사의 비용과 지출 부문은 전혀 통제하지 않은체 자신이나 회사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확장하기만 했고 결국 무리한 경영과 세계경제불황으로 윌리엄 듀런트는 회사를 포기하고 1936년 GM은 파산하기에 이른다. 이후 "듀런트 자동차 회사"를 설립해 재기를 시도했지만 1929년 세계공황의 늪에 빠져 모든 것을 잃고 영영 자동차업계에서 떠나게 됐다.

 쉐보레 설립 이후로 다시 돌아가면 드라이버이자 엔지니어 출신의 루이스 쉐보레는 모터스포츠에서 성적을 낼 고성능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했고, 대중에게 판매되는 차량을 원했던 윌리엄 듀런트와의 견해 차이로 충돌, 1914년 루이스 쉐보레 회사 지분을 매각하고 떠났다. 같은 해 형제들과 함께 쉐보레의 지분을 매각한 자본으로 레이싱 부품을 만들기 위한 "프런테낙(Frontenac Motor Corporation)"를 설립했는데 초기에는 순조로웠으나 1920년 레이싱에 참가한 "개스톤 쉐보레(Gaston Chevrolet)"의 죽음을 시작으로 1921년 "Stutz Motor Company"와의 계약불발로 1923년 파산보호 신청을했다.
 이후 "아더 쉐보레(Arthur Chevrolet)"와 함께 1926년 "쉐브롤에어(Chevrolair 333)"를 설립해 경비행 엔진을 개발하기도 했으나 형제간의 불화로 문을 닫았고 "쉐보레 에어 카 컴퍼니(Chevrolet Air Car Company)"를 차리기도 했지만 경제 위치로 폐업해야만 했다. 결국 1934년 자신의 이름을 딴 쉐보레에 기술자로서 고용되어 일하다 1941년 사망했다.

 GM 산하에서 쉐보레는 1953년 출시한 "콜벳(Corvette)", 1967년 출시한 "카마로(CAMARO)" 등 혁신적인 스포츠카와 머슬카를 개발하며 포드와 경쟁을 벌이며 성장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내에는 2002년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GM Daewoo Auto & Technology, GMDAT)"를 출범했고 2011년 GM대우에서 "한국GM"으로 사명을 변경, 대우 브랜드를 쉐보레 브랜드로 변경하였다.
 현재 한국 GM에서 쉐보레 브랜드로 판매하는 차 중에서 순수한 미국산 수입차는 다음과 같다.

 

  1. 카마로(CAMARO) : 1967 ~
  2. BOLT EV : 2016 ~ (대한민국 2017년 출시)
  3. BOLT EUV : 2021 ~
  4. 이쿼녹스(EQUINOX) : 2004 ~ (대한민국 2018년 출시)
  5. 콜로라도(COLORADO) : 2003 ~ (대한민국 2019년 출시)
  6. 트래버스(TRAVERSE) : 2008 ~ (대한민국 2019년 출시)
  7. 타호(TAHOE) : 1992 ~ (대한민국 2022년 출시)

 


정식 명칭 : Dodge
설립 : 1914년

 

 닷지는 "존 닷지(John Dodge)"와 그의 동생 "호러스 닷지(Horace Dodge)"에 의해 설립된 회사로 초기에는 자전거 공장을 운영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 최초의 자동차 회사였던 "올즈모빌(Oldsmobile)"에 그들이 베어링 기술을 활용한 변속기를 납품했고 "포드(Ford)"에 엔진을 제작해 공급하면서 자동차 부품기업으로 발전했다. 이후에는 포드의 설립자인 "헨리 포드(Henry Ford)"와의 갈등으로 결별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기술력은 이미 완성차를 제작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고 1914년 "닷지 브라더스 사(Dodge Brothers)"를 설립함과 동시에 포드의 자동차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첫 번째 자동차 "닷지 모델 30"을 출시했다. 모델30은 포드와는 다르게 고객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차체 색상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했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닷지의 브랜드를 알리기 시작했다.

 닷지 형제의 형인 존 닷지는 판매를 중심으로 하는 관리자 유형이었고 동생인 호러스 닷지는 타고난 정비공이자 열성적인 수리공에 가까웠는데 둘 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기술력 확보에 집중했고 그와 동시에 닷지의 경영까지 정상적으로 운영하면서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술력에 대한 집착은 전기 전조등, 제동등, 문 잠금장치 등의 현재의 자동차에 적용되는 보편화된 기술을 개발해냈고, 자동차 성능 시험장을 최초로 운영하여 주행 성능 테스트를 한 후 자동차를 시판하는 체계를 확립했다. 이는 당시 미국사회에 혁명적인 자동차 검증절차였고 판매하는 차량에 신뢰를 줄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1920년 닷지 형제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구심점이 사라진 닷지 자동차는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결국 1929년 미국 자동차업계의 신흥강자였던 "크라이슬러(CHRYSLER)"에 인수되었다. 이후 픽업트럭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고 픽업트럭을 생산하던 기술력을 바탕으로 1958년에 출시한 "챌린저(Challenger)"와 1966년에 출시한 "차저(Charger)" 등의 출시로 머슬카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으며, 1984년 출시한 최초의 미니밴인 "캐러밴(Caravan)"을 출시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크라이슬러의 성장과 부활에 큰 원동력이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1989년 "닷지 바이퍼(Dodge Viper)"를 출시하면서 아메리칸 스포츠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함과 동시에 유럽 슈퍼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었다.

 크라이슬러 산하에 있었기 때문에 크라이슬러의 품질적인 문제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1998년 독일의 "다임러(Daimler)"그룹과 합병하면서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 산하에 있었고 이후 2011년에는 크라이슬러의 지분이 피아트에 잠식되기 시작 2014년 피아트 계열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현재는 2021년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iat Chrysler Automobiles N.V.)"와 "PSA 그룹(Peugeot Société Anonyme)"의 합병으로 세워진 "스텔란티스(Stellantis)" 산하의 디비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는 2003년 다임러-크라이슬러 코리아 산하의 브랜드 형태로 진출했으나, 미국차 특유의 무거움과 높은 연비, 만만치 않은 가격정책등으로 2011년 철수했다.

 


정식 명칭 : The Lincoln Motor Company
설립 : 1917년

 

 링컨은 1902년 "헨리 릴런드(Henry Leland)"에 의해 설립된 캐딜락이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의 제안을 받아들여 1909년에 "제너럴 모터스(GM, General Motors)"에 매각되고,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비행기 엔진 개발을 진행하자던 헨리 릴런드와 자동차만 고집한 윌리엄 듀런트와의 의견 충돌로 헨리 릴런드가 GM을 떠나면서 설립한 회사이다.

 GM을 떠난 헨리 릴런드는 1917년 그의 아들 "윌프레드 릴런드(Wilfred Leland)"와 "링컨 자동차 회사(Lincoln Motor Company)"를 세웠고 초기에는 비행이 엔진을 제작하다가 1919년부터 자동차 제작 업종으로 바꾸면서 링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링컨은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이자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한 명인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이듬해 "링컨 V8(Lincoln V8)"을 출시했다. 하지만 고급차였던 링컨은 낮은 연비와 비싼 가격, 거기에 평범한 디자인으로 시장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판매 부진으로 재정난에 빠지게 된다.

 당시 "헨리 포드(Henry Ford)"의 포드에서는 판매되는 차량으로 시장의 호평을 받고 있었지만 고급차 시장에 내세울 만한 모델이 전혀 없었고 1922년 재정난에 빠진 링컨을 인수하면서 포드의 고급차 브랜드 개발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헨리 릴런드가 설립한 캐딜락은 제너럴모터스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이후에 설립한 링컨은 제너럴 모터스의 경쟁사 포드의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었다.

 포드 산하의 링컨은 1923년부터 헨리 포드의 아들 "에드셀 포드(Edsel Ford)"에 의해 하나의 하나의 샤시로 여러 종류의 차를 만들며 링컨의 명성을 높여가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초기 헨리 릴런드가 출시한 링컨V8 기반의 "타운카(Towncar)"이다. 초기에는 에드셀 포드가 헨리 포드를 위해 만들었지만 반응이 좋아 주문 제작 차량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고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W.C. 필즈(W. C. Fields),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와 같은 저명인사들이 이 차량을 애용하였다.
 1936년에 출시한 "제퍼(Zephyr)"는 당시의 각지고 투박한 고급차와는 달리 공기역학을 고려해 디자인한 유선형 차체를 가지게 되면서 재정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또한 1939년에는 고급차의 대명사로 꼽히는 "컨티넨탈(Continental)"을 출시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컨티넨탈은 최초로 뉴욕 현대미술관으로부터 아름다운 디자인을 갖춘 차로 뽑히기도 했고 1950년대에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등 전설적인 팝스타들 또한 애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며 미국 고급차 시장을 이끌어갔는데 1990년대 미국 고급차 시장에 일본, 독일, 영국 등 다양한 브랜드가 진출하면서 입지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점점 시장에서 도태되기 시작했다. 포드에서는 디자인만 화려하게 바꿔 비산 차로 포장시키는 전략을 고수하면서 링컨의 개성과 정체성을 잃어가지 시작했고 결국 1998년 포드의 혁신을 이끌어 가던 프리미엄 브랜드였던 링컨은 독자 브랜드 자리를 잃고 당시 "재규어(JAGUAR)"와 "볼보(VOLV)"가 소속되어 있던 포드 산하의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PAG, Premier Automotive Group)"으로 옮겨졌다.

 PAG 산하에서 링컨은 컨티넨탈은 등의 차량을 라인업에서 지우고 "내비게이터(NAVIGATOR)" 등을 출시하며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다가 2002년 경쟁사 제너럴 모터스의 캐딜락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자 링컨 브랜드를 다시 부활시켰다.
 포드의 엔진 다운사이징 기술 등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침체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링컨만의 우아한 정체성을 갖춘 디자인들을 선보이면서 프리미엄 브랜드로써 입지를 다시 한번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2년 포드 산하의 부서에서 동등한 브랜드의 위치로 링컨을 복귀시켰고 2017년에는 컨티넨탈에 최초 적용된 한층 더 고급스러운 시그니쳐 그릴을 모든 라인업에 적용시켰다.
 또한 다른 북미 시장을 주도하던 일본 프리미엄 브랜드의 존재감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북미 고급차 시장에서는 링컨의 존재감이 높아졌다.

 2020년에는 MKZ, 컨티넨탈을 단종하면서 프리미엄 SUV 브랜드로 탈바꿈하였다.

 국내에는 1988년부터 기아를 통해 링컨 컨티넨탈이 수입되었고 1996년 포드가 한국법인을 세우면서 직판체제로 변경되었다.

 

  • 생산 차량
    1) 코세어(CORSAIR) : 2019 ~, 준중형 SUV
    2) 노틸러스(NAUTILUS) : 2015 ~. 중형 SUV
    3) 에이에이터(AVIATOR) : 2002 ~, 준대형 SUV
    4) 네비게이터(NAVIGATOR) : 1998 ~, 풀사이즈 SUV

 


  • 리플렉터블 라이트(Retractable Light) : 평소에는 숨어있다 필요할 때만 튀어나와 앞을 비춰주는 방식의 전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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