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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ence, Metropolitan City of Florence, Italy (Published on November 29, 2018 / Heidi Kaden)


 2부에서는 "피아트(FIAT)"에 소속된 자동차 회사를 소개한다. 피아트에 포함된 자동차 회사 대부분은 지는 것을 싫어하는 이탈리아의 국민성 덕분에 대중성이 없고 접근성이 낮은 고성능 자동차가 주류를 이루며 이로 인해 여러 경영위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비록 현재는 피아트에 소속되어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골수팬을 보유하고 있고 각종 세계적인 레이싱 대회에서 한 획을 그었던 자동차 회사들이며, 기술력이나 특유의 아이덴티티는 여전히 그 나름의 브랜드로써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2부에서 소개하는 자동차 회사는 란치아 / 알파 로메오 / 마세라티 / 아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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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 Lancia
설립 : 1906년

 

 란치아의 설립자 "빈센조 란치아(Vincenzo Lancia)"는 "피아트(FIAT)"에서 테스트 드라이버로써 근무하다 레이서로 발탁되어 활동하던 중 "클라우디오 포골린(Claudio Fogolin)"와 함께 1906년 "란치아자동차회사(Lancia Automobiles)"를 설립했다. 자동차 레이싱 선수로서도 명성을 가지고 있는 빈센조 란치아는 자동차의 기술 분야와 제작분야를 직접 담당하고 클라우디오 포골린은 판매를 담당했다.

 1907년 란치아의 첫 차인 "알파(ALPHA)"를 시작으로 1913년 나온 "세타(Theta)"의 경우 유럽에서 최초로 표준화된 시동장치와 전기점화장치를 사용했다.
 1922년에는 오늘날 승용차가 가지고 있는 앞 두 바퀴가 제각기 상하로 움직이는 독립 현가식 스프링 구조이면서 "모노코크(Monocoque)*" 차체 구조를 도입한 란치아의 최대 걸작 "람다(Lambda)"를 출시했다. 이처럼 란치아는 성능과 수려한 디자인으로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었고 주력 차종이었던 "베타(Beta)", "감마(Gamma)", "풀비아(Fulvia)", "2000" 같은 차들은 그 시대에 뛰어난 기술력의 고급차로 인정받았으며, 이같은 기술력은 각종 랠리와 포뮬러원(F1), WRC(World Rally Championship) 등 여러 자동차 대회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1960년대 경영난을 이후로 피아트 그룹 산하에 인수합병되었고 1990년대 들어 각종 자동차 대회에서 활약이 없자 철수함과 동시에 복고적인 디자인 적용이 실패하면서 점점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또한 피아트와 "크라이슬러(Chrysler)" 합병 이후에는 크라이슬러 자동차에 란치아 로고만 적용해 판매했다. 란치아 고유 모델은 "델타(Delta)"와 "입실론(Ypsilon)" 뿐이었는데 이마저도 2014년 델타의 단종으로 입실론 1종만 남게 되었다.

 

  • 생산 차량
    입실론(YPSILON) : 1996~


 국내에는 1980년대 후반 수입차 시장 개방에 따라 금호그룹과 한보그룹에 의해 피아트와 함께 수입되다가 외환위기 이후 철수했다.

 


정식 명칭 : Alfa Romeo Automobiles S.p.A.
설립일 : 1910년 06월 24일

 

 알파 로메오의 기원은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다라크(Alexandre Darracq)"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기계설계에 탁월한 재능을 지녔던 알렉상드르 다라크는 초기 재봉틀 제조일을 하다 1889년 파리 전시회에서 자신이 만든 제품들이 금메달을 수상에 힘입어 1891년 "글레디에이터 사이클(Gladiator Cycle)"을 설립한 후 큰 성공을 통해 1896년 매각, 이후 "다라크 자동차(Societa Italiana Automotomili Daracq)"를 설립하면서 자동차 업계로의 첫발을 내디뎠다.
 1904년에 다라크 자동차는 프랑스 전체 자동차의 10%를 점유할 만큼 규모를 확장했고 1906년에는 이탈리아 자본가들을 끌어들여 이탈리아에 다라크 자동차를 설립했다. 프랑스에서 부품을 가져와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방식이었는데 프랑스에서 넘어오는 부품의 품질문제가 불거지면서 경영이 악화되어 "까발리에 메로시(Cavaliere Merosi)"와 "안토니오 산토니(Antonio Santoni)"에게 매각되었다.
 1909년에 다라크 자동차를 인수한 후 1910년 "롬바르다 자동차제작주식회사(ALFA: Anonima Lombarda Fabbrica Automobil)"를 출범, 첫 자동차로 "24HP"를 생산했다. 이후에는 엔진 출력을 높여 40, 60HP 모델도 생산했고 1911년에는 레이싱 대회에도 진출했다. 하지만 너무 비싼 가격과 상품성 문제 때문에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았고 결국 재정난에 빠지면서 1915년 "니콜라 로메오(Nicola Romeo)"에게 인수되었다.

 니콜라 로메오가 인수한 이후 사명을 "Anonima Lombarda Fabbrica Automobili Romeo"로 변경하면서 지금의 "알파 로메오(ALFA Romeo)"가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알파 로메오에서는 자동차가 아닌 군용 자동차와 엔진을 생산했고 이를 통해 자본력을 얻을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 다시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를 영입해 레이싱 활동도 시작했다.
 각종 세계 최고의 레이싱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면서 도로에서 주행이 가능한 스포츠카로 최고의 인기를 얻으면서 명차 반열에 올랐으나 판매보다는 레이싱에 치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알파로메오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결국 1930년에 니콜라 로메오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레이스계를 떠났고 1933년에는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에 의해 이탈리아 산업 부흥 공사(IRI) 산하로 들어가게 되면서 국영화되었다. 국영화된 이후 트럭, 버스, 밴 등의 상용차 제조에도 참여했으나 1938년 "티포 158(TIPO 158)"이라는 차량을 앞세워 그랑프리에 복귀, 1940년대 후반까지 27연승이라는 찬란한 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1950년 F1 월드 챔피언쉽이 탄생했을 때 모든 레이스에서 폴포지션과 우승을 차지했고 1951년에도 절반 이상의 폴 포지션과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덕분에 알파로메오의 위상과 명성은 높아졌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팀의 유지의 한계를 느껴 1952년 F1에서 철수하게 된다.
 1954년 "줄리에타(Giulietta)"의 출시로 큰 인기를 끌었고 1971년에는 전륜구동 구동계를 적용한 해치백 모델인 "알파수드(Alfasud)"의 출시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가 싶었지만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적자의 늪에 빠지게 된다. 또한 상대적으로 독일자동차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면서 브랜드 파워의 약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경영난에 빠졌고 결국 IRI는 1986년 민영화, 1987년 "피아트(FIAT)"에 매각했다.


 피아트에 인수된 이후 오랜 시간 판매 부진을 겪다가 스포츠&럭셔리 시장을 겨냥해 피아트 산하의 "마세라티(Maserati)" 엔진을 장착한 "8C"를 2007년 출시했고 2013년에는 "4C", 세단 라인업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2016년 "줄리아(GIULIA)"까지 출시되면서 북미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했고 여러 라인업을 추가하면서 미판매 시장까지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 생산 차량
    1) 줄리아(Giulia) : 1962~ (2세대는 2016년 출시)
    2) 스텔비오(Stelvio) : 2016~
    3) 토날레(Tonale) : 2022~

 

 국내에는 한보그룹을 통해 1996년 정식 수입되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한보그룹이 부도나면서 알파 로메오는 단 1대의 차량도 판매하지 못한 채 피아트와 철수했다. 철수한 이후 현재까지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고 있다.

 



정식 명칭 : Maserati S.p.A.
설립일 : 1914년 12월 01일

 

 7형제의 넷째로 출생했던 "알피에리 마세라티(Alfieri Maserati)"는 자동차 관련 사업에 몸을 담고 있던 "카를로 마세라티(Carlo Maserati)", "에토레 마세라티(Ettore Maserati)", "에르네스토(Ernesto Maserati)", "빈도(Bindo Maserati)"와 함께 1914년 "오피치네 알피에리 마세라티(Officine Alfieri Maserati)"를 창립했다.

 창업 초기에는 "이소타-프라스키니(Isotta-Fraschini)"의 차량을 레이싱카로 제작하는 일을 주로 했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1926년 "티포 26(TIPO 26)"을 출시하면서 마세라티의 상징인 삼지창 엠블럼도 최초 공개되었다. 이후 티포26은 여러 레이싱 대회를 석권하며 전설의 경주차로 등극했고 기술 개발에도 여력을 쏟아 1929년 16기 통의 초대형 엔진 V4를 개발했다. 해당 엔진으로 지상 최고 속도 기록을 달성했고 이후에도 새로운 엔진 개발과 정교하게 튜닝된 새시를 통해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1932년 형제들의 리더 격인 알피에리 마세라티의 사망으로 기세가 꺾이자 1937년 "아돌포 오르시(Adolfo Orsi)"에게 회사를 매각했고 오르시 가문에 의해 마세라티는 레이싱에만 전념하지 않고 양산차를 제작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1947년 마세라티 최초의 양산차이면서 현재의 "그란 투리스모(GranTurismo)"의 시조 격인 "A6 1500"를 출시했다. 이후 1957년 우승을 끝으로 마세라티는 레이싱계에서 은퇴, 고성능 양산차에 제작에 집중하게 되었다.
 1957년까지 마세라티는 23개의 챔피언십과 32개의 F1 그랑프리 대회 등에서 500여 회의 우승을 기록했다.

 고성능 양산차 제작을 결정한 이후 경영난에 허덕이기 시작했고 1968년에 "시트로엥Citroën)"이 오르시 가문으로부터 인수했으나, 시트로엥 또한 석유파동에 의해 경영상태가 악화되면서 1973년 이탈리아의 슈퍼카 전문 제조업체인 "드 토마소(De Tomaso Modena SpA)"에 인수되었다. 여러 회사로 인수되는 와중에도 "기블리(Ghibli)", "콰트로 포르테(Quattroporte)" 등 여러 슈퍼카들을 출시했으나 경영은 정상궤도에 올라서지 못했고 1993년 현재의 피아트 그룹에 인수되었다.

 피아트에 인수된 이후 전체적인 모델을 새로 개편하면서 1997년 "페라리(Ferrari)" 산하에 편입, 몇 없는 라인업으로 대형 세단 가운데 고급스러우면서도 가장 운전 재미가 좋은 자동차라는 평가를 받는 등, "포르쉐(PORSCHE)"보다 윗급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작된 불경기로 대중성을 가진 라인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확대하고자 했으나 이탈리아의 자동차 산업 자체가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슈퍼카를 비롯한 최고급 럭셔리 자동차이거나 서민시장층의 저렴한 소형 차등의 대중차에만 특화되어 있어 독일 자동차들의 중산층을 타깃으로 한 프리미엄 고급차 시장에서의 노하우가 없었다. 때문에 나름대로 원가를 낮추기 위해 편의장비를 그룹 내 모든 모델에 적용하거나 기본적인 편의장비를 삭제하고 출시, 거기에 출시한 신차들이 성능과 주행 감각의 퇴보와 품질문제가 발생하자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2013년 엔트리급 모델인 3세대 기블리를 출시했고 기존 마세라티는 페라리와 동급으로 보던 인식에서 탈피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현재에 이르러 포르쉐를 목표로 라인업을 재정비,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고 있다.

 

  • 생산 차량
    1) 콰트로포르테(Quattroporte) : 1963~ / 스포츠 대형 세단
    2) 기블리(Ghibli) : 1967~ / 스포츠 준대형 세단
    3) 르반떼(Levante) : 2016~ / 준대형SUV
    4) 그레칼레(Grecale) : 2022~ / 중형SUV
    5) MC20(Maserati Corse 20) : 2020~ / 미스쉽 슈퍼카

 

 국내에는 2007년 페라리와 함께 포르자모터스코리아(FMK)를 통해 처음 진출했고 2015년 포르자모터스코리아의 모기업이었던 동아원그룹이 어려워져 현재는 효성그룹이 딜러를 맡고 있다.

 


정식 명칭 : Abarth
설립 : 1946년

 

 아바스는 "카를로 아바스(Carlo Abarth)"에 의해 1946년에 설립된 스포츠카 업체이탈리아의 "치시탈리아(Cisitalia)"를 모태로 한다.
치시탈리아의 모터스포츠 책임자로 일헀던 카를로 아바스는 투자자의 도움을 받아 경영난을 겪던 치시탈리아의 자산을 인수했고 1948년 이탈리아 출신의 레이서인 "귀도 스카글리아리니((Guido Scagliarini))"와 함께 "아바스&C. SrL(Abarth & C. SrL)"를 설립했다. 이후 1949년부터 치시탈리아의 자동차를 개조해 스포츠카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스쿼드라 아바스(Squadra Abath)" 레이싱 팀을 창설해 각종 자동차 경주에 직접 참여했다.

 이후 카를로 아바스는 엔지니어 재능과 레이서 출신의 경험을 살려 레이스 자동차용 배기 시스템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상품성을 인정받아 1952년에는 페라리GT와 각종 레이싱 자동차에 배기 시스템을 공급하게 된다. 또한 1955년에는 "피아트600"을 보다 작은 합리적인 스포츠카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각종 튜닝 제품을 제작하기 시작해 자체 튜닝회사로써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여러 레이스의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소형차가 빠르면서도 안정적인 레이싱카로 적합하다는 것을 입증했고 아바스는 작지만 강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1960년대 들어 아바스는 퍼포먼스와 승리를 위한 대명사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각종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승승장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까지 레이싱 트랙에서 독주를 거듭하던 아바스였으나, 카를로 아바스의 경영방침 자체가 회사의 이익보다는 레이싱에서 우승하기 위한 것에 더 가까웠고 이로 인해 자금난을 겪기 시작하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피아트와 파트너십 관계에서 1971년 피아트에 인수 합병했고 피아트의 고성능 차량 라인업을 만드는 서브 브랜드가 되었으나 1981년부로 아바스라는 회사명은 사라졌고 피아트 산하의 스포츠 차량들에 간간히 이름을 올리며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다 2007년 피아트에 의해 아바스가 부활했고 피아트의 여러 차량들의 스포츠 버전을 제작하는 자회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모노코크(Monocoque) : 바디와 새시가 일체형으로 구성된 차체 구조 (=Uni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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