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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ew from The Shard, London, United Kingdom (Published on December 19, 2017 / Benjamin Davies)


 1907년부터 1997년까지 대영제국(British Empire)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영국은 여러 식민제국을 거느렸던 나라로 세계 최대의 영토 면적을 가지고 있었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던 5대양 6대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던 최초의 초강대국 개념의 국가였다. 이렇듯 영국은 500년에 걸친 오랜 역사를 통해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기술력과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주로 항공 우주산업, 방위산업, 제약업 등 기술 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첨단 제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전통적인 금융업 강국답게 여러 세계적인 은행들을 보유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역시 현재는 이전에 비해 입지를 상당부분 상실한 상태이긴 하나,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는 미국 다음으로 생산량 세계 2위, 수출량 1위를 유지할 정도로 막강한 산업력을 갖추고 있었다. 입지를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라고 보는 이유는 영국의 자동차 회사들 대부분이 일반 소비자보다는 기업 위주 비즈니스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국 자본 소유의 자동차 회사는 하나도 없고 전부 외국 자동차 회사의 자회사 및 현지 생산공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러한 실정이긴 하나 영국에 뿌리를 둔 브랜드들 대부분이 전세계적으로 고성능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인정받고 있고 영국 내 자동차 생산 역시 대부분이 프리미엄 브랜드이기 때문에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본 포스트에서는 영국의 자동차회사 중 영국 왕실 인증 허가를 받은 애스턴 마틴 / 벤틀리 / 재규어 / 랜드로버에 대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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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 Aston Martin Lagonda Global Holdings plc

설립 : 1913년

 

 영화 007 시리즈의 본드카로 잘 알려져 있는 애스턴 마틴은 1913년 "리오넬 마틴(Lionel Martin)"에 의해 설립된 자동차 회사이다.

 

 리오넬 마틴은 1903년부터 자동차 판매사업을 했고 1913년 친구였던 "로버트 뱀포드(Robert Bamford)"와 애스턴 마틴의 전신인 "뱀포드 엔 마틴(Bamford & Martin Ltd)"을 설립해 당시 "싱어(Singer)"라는 브랜드의 자동차를 튜닝해 다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초기 애스턴 마틴은 자동차를 튜닝하여 다시 판매하는 업체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자동차의 개성과 아이덴티티를 담기 힘들었고 리오넬 마틴은 1900년 설립된 이탈리아의 "이소타 프라스키니(Isotta Fraschini)"의 자동차 새시를 이용해 하이브리드라는 애칭을 가진 자신만의 차량을 제작했다. 이 차량은 "애스턴 클린턴 힐클라임(Aston Clinton Hillclimb)" 자동차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이를 계기로 1914년 애스턴 클린턴 힐클라임과 자신의 이름을 합쳐 "애스턴 마틴(Aston Martin)"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1915년 애스턴 마틴의 첫 번째 자동차인 "석탄통(Coal shuttle)"이라고 불리는 투박한 모양의 차량을 출시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차량의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자 개발비와 생산비를 회수하지 못해 회사 설비를 1913년에 설립된 항공기 회사 "솝위드 에비에이션 컴퍼니(Sopwith Aviation Company)"에 매각했다.

 이후 리오넬 마틴과 로버트 뱀포드는 군에 입대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0년 리오넬 마틴은 본격적으로 애스턴 마틴을 재건하고 자동차를 제조하기 시작했는데, 제작한 차량으로 1922년 레이스 대회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기록하며 애스턴 마틴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스턴 마틴에서 제작하는 자동차 대부분이 한 대씩만 제작되었고 이 자동차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레이스에 출전하기를 좋아했던 리오넬 마틴은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대중적인 차량들을 제작해 이를 타개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1924년 파산했다.

 

 그렇게 애스턴 마틴은 1926년 엔지니어 "아우구스투스 세자레 베르텔리(Augustus cesare bertelli)"와 레이싱 선수였던 "윌리엄 렌윅(William Renwick)"이 애스턴 마틴을 이끌어 나갔고 당시 르망 경기를 위해 제작한 "LM3"를 통해 좋은 성적과 더불어 큰 홍보효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애스턴 마틴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군수 물자를 생산하며 회사를 운영하던 도중 자동차 회사임을 잊지 않기 위해 1938년 "아톰(Atom)"이라는 컨셉카를 만들면서 애스턴 마틴의 미래를 다짐했다.

 이후 트랙터와 같은 산업용 장비를 만드는 "데이비드 브라운 그룹(David Brown Group)"의 총수였던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은 스포츠카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아톰을 시운전해보고 자금난에 허덕이던 애스턴 마틴의 인수를 결정했다.

 

 1947년 애스턴 마틴을 인수한 데이비드 브라운은 1906년에 설립된 "라곤다(Lagonda Company)"도 함께 인수해 다양한 차량을 개발, 판매하기 시작했다. 라곤다의 영향으로 애스턴 마틴 또한 발전하기 시작했고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브라운은 애스턴 마틴을 살려내는데 성공했고 이를 기념해 이후에 출시되는 주력 차종은 데이비드 브라운의 앞글자를 딴 "DB+숫자"로 명명했다.  1958년에는 대망의 "DB4"를 출시하면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고 각종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이후 1972년 "컴퍼니 디벨롭먼트 (Company Developments Ltd)"으로 매각되었고, 1975년에 다시 북미 사업가들에게 매각되었다가, 미국의 "포드(Ford)"가 1987년부터 애스턴 마틴의 브랜드 인수 작업을 시작해 1991년 완료했다.


 포드 산하에서 1993년 "DB7"을 출시해 역대 애스턴 마틴 모델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달성해 확실하게 회사의 명성을 구축했지만 포드 산하의 브랜드들의 부품이 적용되는 등의 원가절감이 이루어지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실망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포드의 경영 위기로 결국 2007년 영국의 사업가인 "데이비드 리차드(David Richards)"에 매각되었다.

 데이비드 리차드 경영체제에서 유럽과 북미 시장이 아닌 신흥 시장, 아시아를 목표로 했고 이 사업전략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애스턴 마틴은 전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이후에는 이탈리아 사모펀드와 쿠웨이트의 "아딤 투자회사(Adeem Investment)", 영국의 사업자 "존 신더스 (John Sinders)"가 소유하고 있다가 2020년 캐나다의 억만장자 사업가인 "로렌스 스트롤(Lawrence Stroll)"이 애스턴 마틴의 지분 20%를 인수해 대주주가 되었고 새 회장이 되었다.

 또한 로렌스 스트롤이 프런트로 있는 F1 레이싱팀인 "BWT Racing Point"팀이 "Aston Martin Aramco Cognizant Formula One Team"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애스턴 마틴이 61년 만에 F1에 다시 돌아오게 됐다.

 

  • 생산 차량
    1) DBS : 1967~ / 플래그쉽 그랜드 투어러(GT)
    2) Vantage : 2015~ / 스포츠카
    3) DB11 : 2016~ / 메인스트림 그랜드 투어러(GT)
    4) DBX : 2019~ / SUV
    5) Valkyrie : 2016~ / 하이퍼카
    6) Valhalla : 2019~ / 하이퍼카

 

국내에는 2015년 기흥인터네셔널을 통해 "애스턴 마틴 서울"이라는 상호로 판매되고 있다.

 


정식 명칭 : Bentley Motors Limited

설립일 : 1919년 07월 10일

 

 벤틀리는 "월터 오웬 벤틀리(Walter Owen Bentley)"에 의해 1919년 설립된 영국의 최고급 수공 자동차 제조사이다.

 월터 오웬 벤틀리는 처음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있진 않았다. 영국 철도청에서 일을 시작했고 자연스레 기관차를 지지, 자동차는 진흙탕물이나 튀기는 쓸모없는 도구로 여겼다. 하지만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기차보다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국립 자동차 택시회사(National Motor Cab Co.)"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1912년에는 프랑스의 "DPF"라는 차를 수입/판매하던 그의 동생 "호레이스 밀너 벤틀리(Horace Millner Bentley)"와 함께 동업을 시작하면서 자동차 산업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형제는 수입해온 DPF 자동차를 일부 개조해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9년 "좋은 차, 빠른 차, 최고의 차(Good car, Fast car, Best car)"라는 슬로건을 내건 "벤틀리모터스(Bentley Motors Ltd.)"를 설립, 자동차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벤틀리 형제는 지금의 컨셉카콘셉트카 형태의 차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EXP1"과 "EXP2"를 제작해 자신들의 높은 기술 수준과 성능을 알리기 시작했다. 콘셉트카를 토대로 1921년 벤틀리의 첫 양산차 "3리터(3-liter)"가 출시되었고 여러 경주에 출전해 우승함으로써 벤틀리 브랜드를 알리기 시작했다. 인기에 힘입어 1927년까지 천여대를 생산했으나 일반적인 자동차 생산방식이 아닌 수공 생산방식을 고집하면서 자금난에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1925년 백만장자였던 "울프 바나토(Woolf Barnato)"가 자금 수혈을 함과 동시에 경영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자금 수혈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후반 경제공황 여파로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갔고 1931년에는 울프 바나토의 자금 공급이 중단되면서 같은 해 영국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경쟁하던 "롤스로이스(ROLLS-ROYCE)"에 인수되었다. 롤스로이스에 매각된 이후에도 월터 오웬 벤틀리는 벤틀리에 남아 계속해서 일을 했지만 자동차 디자인과는 상관없는 일들을 하면서 1935년 퇴사했다.

 롤스로이스 산하에서 1952년 세계에서 가장 빠른 4인승 차인 "컨티넨탈(Continental)"을 출시했고 1957년 "컨티넨탈 플라잉 스퍼(Continental Flying Spur)", 1965년에는 "벤틀리 스포츠카 헤리티지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T 시리즈"가 출시됐다. 하지만 롤스로이스 산하에 있으면서 60여 년간 롤스로이스의 자동차를 스포츠 튜닝 형태로 개조한 차량들만 제작하면서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의 스포츠팩 형태로 존재했다.
 롤스로이스 산하에서 BMW-M이나, BENZ-AMG와 같은 형태로 존재할 것 같았던 벤틀리는 1970년대 접어들면서 제트엔진 개발사업으로 경영난을 겪은 롤스로이스가 도산하면서 롤스로이스 자동차는 영국의 "비커스(Vickers)"에 매각되었고 1980년 출시한 "뮬산(Mulsanne)"으로 명성을 얻긴 했으나 비커스의 롤스로이스 매각 결정에 따라 1998년 롤스로이스는 BMW에, 벤틀리는 폭스바겐 산하로 인수되었다.

 폭스바겐은 벤틀리의 생산 능력을 높이고 공장 설비를 현대화하기 시작했고 2003년 출시한 "콘티넨탈 GT(Continental GT)"와 2005년 출시한 "플라잉 스퍼(Flying Spur)"의 성공으로 명성을 되찾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생산 차량
    1) 컨티넨탈(Continental) : 1952~ / 쿠페
    2) 플라잉 스퍼(Flying Spur) : 2005~ / 세단
    3) 벤테이가(Bentayga) : 2016~ / SUV

 

 국내에는 2006년 당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에 의해 진출했다.

 


정식 명칭 : Jaguar
설립 : 1922년

 

 재규어는 모터사이클의 매료되어 있던 "윌리엄 라이온즈(William Lyons)"와 "윌리엄 웜슬리(Willam Walmsley)"에 의해 1922년 설립된 "스왈로우 사이드카 컴퍼니(The Swallow Sidecar Company)"를 전신으로 한다.


 스왈로우 사이드카 컴퍼니는 몇 년간 사이드카를 제작하며 금속 판재나 판금, 내장재, 가죽 및 직물 마감, 유리 가공 기술 등 다양한 기술을 습득했고, 이를 토대로 1905년 설립되어 영국의 국민차였던 오스틴 자동차의 "7(Seven)"과 "벤틀리(Bentley)" 자동차의 디자인을 참고해 바디를 제작한 "오스틴 스왈로우(Austin Swallow)"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1927년에 출시했다. 여러 버전의 스왈로우를 제작해가면서 꾸준히 자동차 제조경험을 쌓았고 "스탠더드 모터 컴퍼니(Standard Motor Company)"의 새시를 기반으로 한 첫 번째 자동차 "SS1"을 완성, 1931년 런던 모터쇼에서 공개했다. SS1은 벤틀리를 닮은 디자인이었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폭발적인 판매가 이루어지면서 사세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1935년 회사의 기술력으로 생산한 고급스러운 외관과 가볍고 탄탄한 기반 설계를 가진 2인승 컨버터블 스포츠카 "SS 재규어(SS Jaguar)"를 출시했다. 1936년에는 최고속도 162km/h의 자동차를 출시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회사명이 나치의 악명높은 전쟁범죄 집단인 "슈츠슈타펠(Schutzstaffel)"의 이니셜 SS와 동일했기 때문에 비로소 1939년 현재의 "재규어 자동차(Jaguar Car Ltd.)"로 사명을 변경했다.

 1948년에는 당시 최고속도 193km/h의 벽을 처음으로 돌파한 "XK120"를 출시하면서 역사에 한 획을 긋었다. 이를 기점으로 재규어에서는 스포츠 쿠페 XK 시리즈를 시작했고 1950년대 르망 25시 레이스에서 통산 5회 우승을 따내기도 했다. 1955년에는 재규어 MK 시리즈의 시작인 "MK.I"을 출시했고, 이후 1959년에 출시된 "MKII" 모델은 1960년부터 3년간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에서 투어링카 부문 우승컵을 쓸어 담는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성능 중심의 설계, 그리고 그것을 결과로 입증해 준 모터스포츠에서 눈부신 성과를 통해 재규어는 고급자동차 브랜드로서 꾸준히 성장했고 1960년 영국의 고급 자동차 제조사인 "데임러(Daimler Motor Company)"를 인수하여 재규어 고급 세단의 브랜드명인 "데임러(소버린)"의 유래가 됐다. 또한 1961년 재규어 최고의 걸작인 "E-Type"을 출시하면서 선대 경주차들로부터 물려받은 걸출한 성능과 안락한 승차감, 거기에 경쟁 모델이었던 페라리나 마세라티에 비해 반값도 안 되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 영국 자동차 산업계의 출혈경쟁이 잦아졌고 이로 인해 재규어 역시 재정 위기가 찾아왔다. 그렇게 1966년 "브리티쉬 모터 코퍼레이션(British Motor Corporation, BMC)"에 합병되었고 1968년 자동차 산업 통합 조치였던 "레일랜드(Leyland)"와 합병을 통해 오스틴, 모리스, 란체스터, MG, 로버 등과 함께 "브리티시 레일랜드(British Leyland Mortor Company)"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생산된 고급세단이었던 "XJ6"은 출시 이후 30년이나 장수했는데 당시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내부 갈등으로 인한 신모델 개발 지연과 재정 악화 등으로 똑같은 모델만 계속해서 생산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1972년 창업주인 윌리엄 라이온즈의 은퇴에 따라 또다시 위기를 겪었는데 윌리엄 라이온즈의 유작이었던 XJ6이후로 뒤늦게 XJ12, XJS 등을 출시했으나 외부 디자인만 변경되었을 뿐 그 기반 설계는 XJ6이랑 동일했고 어떠한 혁신이나 시장 경쟁력 또한 없었다. 거기에 품질문제와 형편없는 신뢰성까지 겹쳐 재규어의 고급, 고성능 제조사의 이미지와 명성만 악화되었다.

 1984년 재규어는 정부가 주도한 민영화 정책에 따라 다시 재규어 자동차로 민영화되었고 1989년 미국의 "포드(Ford)"에 인수되었다. 당시 포드는 재규어 뿐만 아니라 "랜드로버(LAND ROVER)"까지 함께 인수했고 "애스턴 마틴(Aston Martin)"과 "볼보(VOLVO)" 자동차 등을 합쳐 재규어는 고급 자동차 브랜드 그룹인 "PAG(Premier Automotive Group)"의 일원이 되었다.
 PAG의 일원이 된 후 포드의 일부 차종들과 플랫폼을 공유하면서 1999년에 출시한 "S-Type"과 2001년 출시한 "X-Type"을 출시했고 2000년에는 모터스포츠를 마케팅에 이용한 과거의 성공 사례를 참고하여 "재규어 레이싱(Jaguar Racing)"을 조직, F1에도 진출했다.

 제2의 전성기를 누렸던 재규어는 2000년대 후반 세계 금융위기에 의한 포드의 재정 악화로 재규어 레이싱을 레드불에 매각하고 랜드로버와 함께 2008년 인도의 "타타 그룹(TATA Group)"에 매각했다.
 타타 그룹 산하에서 수석 디자이너인 "이안 칼럼(Ian Callum)"의 진두지휘 아래 고전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정립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2007년 출시한 S-Type의 후속 "XF"와 5세대 XJ를 출시했고 좋은 반응과 함께 재기에 성공한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다.

 

  • 생산 차량
    1) XE : 2015~ / 중형세단
    2) XF : 2008~ / 준대형세단
    3) I-PACE : 2018~ / 중형 전기 SUV
    4) F-PACE : 2016~ / 중형SUV
    5) E-PACE : 2017~ / 준중형SUV
    6) F-Type : 2013~ / 스포츠카

 

 국내에는 영국의 해운회사 "인치케이프(INCHCAPE)"를 통해 1992년 진출했다가 1998년 외환위기로 철수했다. 이후 포드에 인수되면서 포드세일즈서비스코리아에서 다시 판매하다가 타타의 인수 이후 2008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가 출범하여 직판매하고 있다.

 


정식 명칭 : LAND ROVER
설립 : 1948년

 

 1886년 자전거 사업을 시작으로 설립된 로버(Rover)를 전신으로 두고 있다. 로버는 1904년부터 자동차 제조를 시작했고 랜드로버의 시작은 로버에서 근무하던 "모리스 윌크스(Maurice Wilks)"와 그의 형인 "스펜서 윌크스(Spencer Wilks)" 형제에 의해 탄생했다.
 이처럼 랜드로버는 로버의 4륜구동 자동차 중 하나였으나 점차 브랜드가 분리되고 독립되어 지금의 랜드로버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윌크스 형제는 "지프(Jeep)"를 타고 다녔는데 지프가 농업용으로 사용하기엔 부족함이 많다고 판단, 지프의 새시를 이용해 4륜 구동이 다목적 차량 제작에 착수했다. 1년 만에 시제품이 완성됐고 1948년 "Series I"이 세상에 공개됐다. 로버의 부품들을 사용해 정비가 간편하고 오프로드 성능이 뛰어나 출시 직후부터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또한 전쟁의 여파로 쇠의 물량이 많지 않았던 유럽 지역에서 알루미늄 차체를 적용하면서 제작단가는 비싸지만 가볍고 녹이 슬지 않는다는 장점으로 인해 더욱 큰 인기를 누렸다.

 출발선은 좋았으나, 이후의 랜드로버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7년 로버가 레일랜드 자동차(Leyland Motors)에 인수되었다가 1968년 정부의 자동차 산업 통합 조치로 "브리티시 레일랜드(BL, British Leyland)"로 통합되었으며, 브리티시 레일랜드 산하에서 랜드로버 시리즈 모델의 지속적인 상업적 성공과 1970년 출시한 "레인지 로버(Range Rover)"의 성공으로 드디어 1978년에는 브리티시 레일랜드 내 별도 자회사로 "Land Rover Limited"가 설립되었다.
 1988년에는 랜드로버를 포함한 "로버 그룹(Rover Group)"이 민영화되면서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ritish Aerospace)"가 인수했고 1989년에는 "디스커버리(Discovery)"가 출시되었다.

 하지만 1994년 BMW가 로버 그룹을 인수하면서 로버그룹이 해체, 2000년 미국의 "포드(Ford)" 자동차에 매각했다. 이후 포드의 위기로 2008년 타타자동차가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인수해 새로운 자회사인 "재규어랜드로버(Jaguar Land Rover)" 출범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랜드로버는 최고급 SUV를 만들지만 결함과 품질 문제가 항상 따라온다. 현재까지도 자잘한 잔고장과 결함은 매우 악명 높다.
 하지만 오프로드 성능은 "오프로드의 명가"로서의 위치를 지키고 있고 전천후 오프로드 주행능력을 인정받아 영국군에서 오랫동안 이용되었으며 각종 오프로드 테스트에서도 다른 제조자들의 SUV가 못 가는 험로를 쉽게 주행한다.

 

  • 생산 차량
    1) 레인지 로버(RANGE ROVER) : 1970~ / 대형SUV
    2) 레인지 로버 스포츠(RANGE ROVER SPORT) : 2005~ / 준대형SUV
    3) 레인지 로버 벨라(RANGE ROVER VELAR) : 2017~ / 중형SUV
    4) 레인지 로버 이보크(RANGE ROVER EVOQUE) : 2011~ / 준중형SUV
    5) 디스커버리(DISCOVERY) : 1989~ / 준대형SUV
    6) 디스커버리 스포츠(DISCOVERY SPORT) : 2014~ / 중형SUV
    7) 디펜더(DEFENDER) : 1948~ / 다용도 사륜구동

 

 국내에는 1992년부터 "인치케이프(INCHCAPE)"를 통해 1992년 진출했다가 1998년 외환위기로 철수했다. 이후 BMW코리아를 통해 판매되었다가 포드에 매각된 이후 2001년 PAG코리아로 이관되었다. 타타의 인수 이후 2008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가 출범하여 직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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