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1. 아사르 가브리엘손과 구스타프 라르손
볼보의 공동 설립자로 불리는 아사르 토르발드 나다나엘 가브리엘손(Assar Thorvald Nathanael Gabrielsson)은 스웨덴 예테보리(Gothenburg)에 있는 베어링 제조업체 SKF(Svenska Kullagerfabriken)에서 영업관리자로 시작해 1922년에는 SKF 회사 전체의 영업 임원으로서 일하고 있었다.
영업 임원으로서 아사르 가브리엘슨은 유럽의 여러 경쟁 베어링 회사들이 자동차 회사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점을 들어 SKF의 이사회에 자동차 제조 사업을 시작하면 자동차에 장착되는 새로운 베어링을 개발할 때 경쟁업체보다 우위를 가질 수 있고 이는 베어링 판매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을 설득해 왔었다. 하지만 베어링 회사에서 자동차 제조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SKF의 이사회 또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사르 가브리엘슨은 포기하지 않았고 개인이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자본을 감당할 수없었기 때문에 SKF에 투자를 받아내기 위해 자동차 시제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자신은 경제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시제품을 만들어낼 수 없었고 그의 머릿속에 1924년까지 같은 회사에서 기계 엔지니어로 일했다가 지금은 AB Galco라는 이름의 기계 엔지니어링 회사에 다니고 있던 오랜 친구 에릭 구스타프 라르손(Erik Gustaf Larson)이 떠올랐다.
아사르 가브리엘슨은 스톡홀름(Stockholm)에 있는 스투레호프(Sturehof)라는 이름의 식당에서 구스타프 라르손과 만났고 스웨덴산 자동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구스타프 라르손 또한 스웨덴산 자동차를 만드는 것에 동의했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맺었다. 해당 계약 내용은 아사르 가브리엘슨이 모든 자본을 제공하고 프로젝트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는 것이었고 구스타프 라르손의 경우 프로젝트에 참여하더라도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보상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아사르 가브리엘슨이 주도한 자동차 시제품 제작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1924년 구스타프 라르손은 볼보의 최초 설계 사무소라고 불리는 자신의 집에서 여러 엔지니어들과 함께 설계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비용들은 아사르 가브리엘슨 개인에게 청구되었다. 그렇게 설계가 완료되었고 구스타프 라르손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AB Galco에서 조립을 진행해 1926년 ÖV 4라는 이름의 시제 자동차를 만들어냈고 최종 투자 계획 발표를 위해 SKF로 향했다.
1926년 08월 10일 스웨덴의 호포로스(Hofors)에서 열린 SKF 이사회에서 자동차 프로젝트에 대해 기존 자회사였던 Volvo AB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Volvo AB는 아사르 가브리엘슨이 시제 자동차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SKF의 전무이사 비욘 프리츠(Björn Prytz)가 미국 시장을 위한 특수 볼 베어링 사업부였고 실제로 사용되지는 못한 이름이었다.
그렇게 1926년 08월 12일 아사르 가브리엘슨과 SKF 간 계약에 체결되어 4대의 시제 자동차와 엔지니어링 도면 등이 모두 Volvo AB로 귀속되었다. 그간의 개인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 비용 또한 모두 지급되었다. 이후 1927년 01월 01일 아사르 가브리엘슨은 Volvo AB의 사장 겸 전무이사로 임명되었고 구스타프 라르손은 부사장 겸 기술 관리자로 임명되면서 처음 계약 당시 그들이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튼튼한 자동차를 만들자라는 구호를 바탕으로 볼보 자동차가 탄생했다.
Cars are driven by people. The guiding principle behind everything we make at Volvo, therefore, is and must remain, safety.
- Assar Gabrielsson and Gustav Larson, 1927
2. 볼보의 최초 자동차
SKF의 투자를 받은 볼보는 예테보리의 하징겐(Hisingen)에 공장을 설립했고 시제 자동차를 기반으로 1927년 04월 14일 볼보 자동차의 최초 자동차이자 첫 출고 자동차인 ÖV 4가 세상에 나왔다.
ÖV 4는 Öppen Vagn 4 cylindrar라는 의미로 지붕이 없는 4 기통 자동차를 의미한다. 1.9리터의 I4엔진*을 장착했고 21마력, 토크 100 N·m(10.2 kgf·m)의 출력을 가지고 있었고 최대 90km/h의 속도로 주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초기 볼보는 그렇다 할 수익을 내지 못했고 SKF에서는 막대한 자본을 계속해서 투입하면서 일반 승용차뿐만 아니라 여러 영역으로 다각화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한 다각화의 일환으로 1928년 ÖV 4의 새시를 이용해 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해 많은 생산량은 아니었지만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며 1930년에 드디어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르지 않았지만 차츰차츰 성장하기 시작하자 1935년 스톡홀름 증권 거래소에 상장하면서 외부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게 만들었고 더 이상 볼보로 자본 투입이 필요 없어진 SKF는 베어링 개발 및 제조에 집중하게 된다.
3. 볼보의 성공
상장 이후 볼보는 차츰 성장은 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는 저조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 1939-1945) 이후 볼보의 도약을 만들어준 자동차 PV444가 출시한다.
PV444는 1944년에 선보이긴 했지만 1947년에야 생산에 들어간 차량이었고 1.3리터 엔진으로 40마력의 출력을 가졌으며, 튼튼하고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설립자들의 이념이 반영되어 접합 유리(Laminated Glass)*가 적용된 자동차였다. 또한 전쟁 직후의 원자재 부족으로 볼보 역사상 가장 작은 자동차였는데 전쟁 직후의 일반인들에게 작은 크기와 저렴한 가격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스웨덴 내부에서 엄청난 주문이 쏟아졌다. 1955년에는 스웨덴 내부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으로의 진출까지 이어지면서 볼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확고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1958년에는 PV444보다 한 체급 높은 PV544를 출시하면서 1.6L 엔진으로 변경하고 차체를 키워 4인이 탑승할 수 있게 거주성을 높이면서 PV444에서의 아쉬움을 대체했다. 이 또한 자동차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단종된 1966년까지 44만 대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1959년에는 볼보 엔지니어였던 닐스 볼린(Nils Bohlin)에 의해 5 점식 안전벨트가 발명되면서 Amazon이라는 이름의 볼보 중형자동차에 처음 도입한 이후 모든 볼보 자동차에 적용되었다. 또한 안전을 위해 해당 특허를 공개하고 다른 자동차 업체들 또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자동차 판매의 성공과 더불어 볼보는 1963년 캐나다에 공장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1964년 스웨덴의 가장 큰 공장 중 하나인 토르슬란다(Torslanda) 공장을 열었고, 1965년 벨기에에도 공장을 설립하는 등 볼보그룹으로 성장했다.
4. 볼보의 위기
1974년에 볼보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 생산의 기본이라 불리었던 컨베이어 벨트 방식을 버리고 자동차 조립에 숙달된 장인들을 배치해 일괄조립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공장 인간화를 선언한 볼보는 컨베이어 벨트 방식보다 고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다고 과시했으나 1989년부터 시작된 스웨덴의 경제불황은 엄청난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는 볼보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더해 미국시장에서의 볼보가 혼다(Honda)나 도요타(Toyota)와 같은 일본 자동차에게 밀리기 시작하자 적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1992년부터 자동차 생산을 컨베이어 벨트 방식으로 회귀시켰지만 그전에 발생했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고 결국 볼보 그룹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트럭과 건설 중장비에 주력하기로 하고 기존의 Volvo Group(트럭, 버스 및 건설 장비 제조업체)과 Volvo Car Corporation(승용차 부문)으로 분리해 1999년 협력관계에 있던 미국 포드(Ford)에 승용차 부문을 매각했다.
포드 산하에서 볼보 승용차들은 후륜구동 기반에서 전륜구동 기반으로 모두 변경되었고 전체적으로 각진 외형에서 유선형으로 변경했지만 안전에 관한 기술들은 그대로 적용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포드가 2000년대 들어 미국의 금융위기 등으로 파산위기에 쳐하자 볼보의 매각 의사를 밝혔고 여러 회사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결국 2010년 중국의 저장지리홀딩그룹(浙江吉利控股集团, Zhejiang Geely Holding Group)에서 볼보를 인수했다.
5. 지리자동차 품에서의 볼보
지리자동차와 포드 간 매각 협상 내용 중 하나는 포드가 볼보의 기술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상태에서 저장지리홀딩그룹은 별도의 기술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언제든지 볼보의 기술을 가져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인데, 이로 인해 스웨덴 프리미엄 브랜드를 얻게 된 지리자동차에서는 볼보의 세부 경영이나 자동차 브랜드에 대한 간섭을 최대한 하지 않고 기술만을 배워가고 공유하는 방법으로 성장하게 됐다.
여러 우려와 달리 지리자동차 산하에서 볼보는 계속해서 성장해 가고 있으며 자동차 산업의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2009년 볼보차량을 고성능으로 튜닝하여 레이싱에 참여하던 기업인 폴스타(Polestar)를 공식 파트너로 선정해 폴스타 퍼포먼스(Polestar Performance)라는 브랜드로 볼보의 고성능 버전 자동차를 출시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폴스타를 인수해 자회사로 두고 고성능 브랜드로 사용하다 전 세계적인 전동화 추세에 맞게 2017년 폴스타를 분사했고 기존 볼보의 고성능 버전을 생산하던 회사가 아닌 독자적인 전기차 브랜드로 변경했다.
2021년에는 2030년까지 순수 내연기관 자동차는 개발하지 않고 하이브리드나 전기자동차만 개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여전히 안전한 자동차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으며 지속적인 투자와 시대를 흐름을 따라 볼보 자동차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한편, 볼보 자동차를 매각한 볼보 그룹은 트럭, 버스 및 건설 장비의 생산, 유통을 하고 있으며 선박 및 산업용 구동 시스템과 금융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그렇게 지속적인 성장을 거쳐 현재는 미국의 맥 트럭(Mack Truck), 르노 트럭(Renault Truck) 등을 소유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형 트럭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I4 엔진
직렬 4 엔진(Inline-four Engine)은 실린더가 일렬로 배열된 피스톤 엔진
*접합 유리(Laminated Glass)
두 개 이상의 유리 사이에 PVB, EVA, TPU 같은 소재로 중간층을 만들어 유리가 깨져도 유리층이 접착되도록 만들어 날카로운 조각으로 부서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유리
1903년 프랑스 화학자 에두아르 베네딕토(Édouard Bénédictus)에 의해 발명되었다.
'Series > S3: First Ca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웨덴 스카니아의 최초 자동차 (0) | 2023.05.23 |
---|---|
스웨덴 사브의 최초 자동차 (0) | 2023.05.22 |
프랑스 부가티의 최초 자동차 (3) | 2023.05.16 |
프랑스 시트로엥의 최초 자동차 (2) | 2023.05.15 |
프랑스 푸조의 최초 자동차 (0) | 2023.05.12 |